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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l 24. 2018

일본 검찰의 꽃 ‘도쿄지검 특수부’

정계 거물 다나카 가쿠에이 구속기소로 국민 환호

1976년 7월27일 오전 6시30분 일본 도쿄 소재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의 자택 앞에 검은색 승용차가 섰다. 일본 도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소속 요시나가 유스케 주임검사가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요시나가 검사는 집 안으로 들어가 다나카 전 수상에게 도쿄지방법원이 발부한 구속영장을 제시했다. 다나카 전 수상은 요시나가 검사 지시에 순응하며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차량에 탔다.


차량이 도쿄지방검찰청 건물에 다가서자 동승한 검사가 다나카 전 수상에게 “검찰청 앞에 취재진이 모여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다나카 전 수상은 “괜찮다”라고 답하며 “내가 들어가는 대신 다른 이는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요시나가 검사를 비롯해 도쿄지검 특수부 소속 48명 검사는 다나카 전 수상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록히드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 관련자 전원을 기소했다.     

다나카 가구케이 전 일본 총리 체포를 보도한 당시 일본 마이니치 신문

1976년초 다나카 전 수상은 록히드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휩싸여 있었다. 이에 미키 다케오 당시 일본 수상은 록히드 사건을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다나카는 자민당내 자기 파벌들을 동원해 미키 수상을 끌어내리려 했다. 당시 미키 계파는 자민당내 소수파였다. 다나카는 1976년 5월 7일 주요 파벌을 끌어들여 미키 수상을 해임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국민은 분노했다. 록히드 뇌물 수수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간주한 것이다. 다나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파 결속을 강화했다.     


이 와중에 요시나가 검사가 7월 26일 전격적으로 다나카를 체포한 것이다. 집권 자민당 내 계파 의원 80여명을 거느린 정치 거물을 느닷없이 집까지 처 들어가 구속했으니 일대 사건이었다.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자민당 내 다나카 파를 비롯해 상당수 정치인은 도쿄지검 특수부를 겨낭해 비판의 언사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반면 일본 국민 대다수는 특수부 검사 기개에 찬사와 함께 성원을 보냈다.     


결국 다나카 전 수상은 뇌물죄로 기소됐고 1983년 10월12일 징역 4년 실형을 받았다. 그는 도쿄고등법원에 항소했으나 항소심 열리기 전 1985년 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대법원 상고 중 1993년 12월 75세 나이로 사망했다. 다나카 전 수상의 비서관 에노모토 토시오를 비롯해 뇌물 수수 연루자 11명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세키네 히데유키 가천대 일본어학과 교수는 "다나카가 구속되고 나서도 정치권 뇌물 사건은 끊이지 않았으나 (도쿄지검 특수부가) 다나카 같은 정치 거물도 체포할 수 있음을 일본 국민들은 새삼스레 일깨웠다"라고 말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금도 정치·경제 분야 권력형 비리를 성역없이 수사·기소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로 인해 도쿄지검 특수부는 일본 검찰의 꽃으로 불린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2018년 3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한 것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3월23일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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