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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pr 24. 2023

4천m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 속 기괴한 도시, 라파스

4월 22일(토) 지나칠 뻔 곳에서 귀인 만나 알짜 여행 만끽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스에 왔다. 6천 m 넘는 고봉 아래 4천 m 산봉우리들에 둘러싸인 분지에 벽돌집이 조개 따개비처럼 산을 따라 따닥따닥 붙어 산 끝까지 뻗어 올라가는 모습이 기괴해 보인다. 아름답다할 수 없지만 매우 독특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이런 모습의 도시를 본 적이 없다. 우리네 달동네 판자촌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이라고 할까. 

멀리 6천m 설산 아래 4천m 고봉들에 둘러싸인 분지 속 라파자는 얼핏 개미굴처럼 보인다 

라파스는 우유니에서 페루 쿠스코로 넘어가는 중간 기착지 정도로 생각했다. 우유니에서 밤 10시 30분 침대버스를 타고 아침 7시 30분 라파즈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로 직행해 자다가 다음날 아침 6시 비행기 편으로 쿠스코로 갈 예정이었다. 터미널에서 빠져나오자 우유니 숙소에서 인사한 강문 씨가 보였다. 센트로로 가는 길이라면 함께 택시를 타려고 반가운 척을 했다. 그는 현지 유심을 장착한 핸드폰으로 구글맵을 보면서 자기 숙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염치없이 내 숙소 위치도 물어봤다. 그런데 숙소가 터미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체크인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도심 60만명 외곽까지 200만명이 사는 라파스는 대책없이 팽창하고 있다. 심지어 고봉을 넘어 위성도시까지 생기고 있다.

강문 씨는 숙소에 짐만 맡기고 나와 케이블카(뗄레뻬리꼬)를 타고 라파즈 전역을 한 바퀴 돌 예정이라 했다. 그를 따라다니기로 작정했다. 라파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므로 강문 씨만 따라다니면 하루 투어 정도는 가능할 듯했다. 뗄레빼리꼬는 상상이상이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접시 같은 분지 위를 떠다니며 도시 곳곳을 잇고 있다. 뗄레빼리꼬 노선은 11개나 있다. 라파스 외곽에 형성된 엘알토까지 이어진다. 엘알토는 라파즈 집 값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간 이들이 산 넘어 지은 외곽 도시다. 도시 모양새나 건축 양식이 라파즈와 비슷하다. 

밤에는 가로등과 가정집 조명이 어울러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야경을 만든다. 

강문 씨는 철저하게 조사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거칠 것 없이 여기저기 샅샅이 돌아다니며 도시 곳곳을 내려다보면 도시 관광을 즐겼다. 엘알토 빈촌에서부터 우리네 청담동 또는 분당 같은 곳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갔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 내려 걸어 다니기도 했다. 이 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다. 강문 씨가 아니었다면 내게 라파즈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없었을 거였다. 기괴하면서도 아주 독특한 도시의 여행을 놓칠 뻔했다. 중남미에서 내 행운은 계속되고 있다. 

지나칠뻔한 라파스에서 추억을 안겨준 은인 강문. 그는 도포와 갓을 하고 세계를 여행하는 독특한 젊은이다.

강문은 한복에 갓을 쓰고 세계 곳곳을 다닌다. 가는 곳마다 현지인이 관심을 보이며 아는 척하는 게 좋아서 입기 시작했다. 갓을 일일이 손에 들고 다니거나 써야 하는 탓에 번거롭긴 하지만 여행지마다 자기 존재를 명확히 알리는데 유용해 즐겨 입고 다닌다. 나름 원칙이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관람 목적이 명확한 곳에는 도포와 갓을 하지 않는다. 자기에서 시선을 쏠린 나머지 예술품이나 골동품에 대한 관람을 방해할 것으로 우려한 탓이다. 이제 서른하나다. 프로그래머로서 일하다 그만두고 여행을 다닌다. 여행 마치면 다시 프로그래머 일을 한다. 프로그래머가 워낙 수요 초과 상태라 언제든지 그만둬도 재취업이 용이하다. 이 친구와 밤늦게까지 거의 모든 노선을 2번 이상 돌고 나서야 저녁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대단한 체력이다. 

라파스 곳곳을 연결하는 도시 주력 교통수단 뗄레뻬리코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하는 터라 숙소 근처 햄버거 집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먹고 헤어졌다. 숙소에 들어가니 미인 3명이 내 방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4인 도미토리룸를 함께 쓰는 이들이 모두 유럽 여자들이었다. 깨어있는 영국인 로티, 독일인 에밀리와 인사했다. 앳된 여성 3명과 한방에 잔다고 하니 강문 씨가 너무 부러워했다. 그럼 뭐 하나. 내일 새벽에 일어나 떠나야 할 처지인데. 그래도 다시 얕은 사귐을 시작했다. 15분간 수다로 친해진 뒤 샤워하고 누웠다. 옆에서 로티가 쌕쌕거리며 잔다. 세계 여행하다 보면 혼성 도미토리룸에서 자주 묵지만 참 적응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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