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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Apr 26. 2023

잉카 유적지에서 본의 아니게 어글리코리안의 모습을 ㅠㅠ

4월23일(일) 성스러운 계곡 투어 돌며 잉카의 영광과 비극 체험

페루 쿠스코에 들어왔다. 잉카인은 퓨마 모양으로 쿠스코를 조성하고 수도로 삼았다. 쿠스코는 케추어로 배꼽이란 뜻이다. 잉카인은 쿠스코를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다. 스페인 약탈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쿠스코를 약탈하고 뒤 따라 들어온 가톨릭 세력이 잉카의 제단과 궁전을 파괴하고 그곳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잉카인이 쌓은 주춧돌과 석벽 위에 스페인이 세운 바로크 양식 건축물이 합쳐지면서 도시 모양이 스페인 시골 도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남미 어느 도시보다 쿠스코는 기품이 있고 아취가 있다. 아르마스 광장부터 산페드로 시장까지 골목 곳곳을 걸어 다니다 보면 도시가 자아내는 분위기에 흠뻑 젖는다. 우디 앨런 감독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마냥 걷다 보면 스페인 약탈자에 맞서 생존을 모색하는 잉카인들을 만날 수 있겠다 싶다. 

쿠스코 도심 중앙 아르마스 광장은 늘 인파로 붐빈다

아르마스 광장 정면에 잉카의 유적을 허물고 그 위에 흉물스럽게 자리한 바실리카 옆으로 이어진 골목을 걷다 보면 잉카인이 쌓은 돌벽들이 이어진다. 12각 돌이라 불리는 돌을 비롯해 갖가지 모양의 돌들이 종이 한 장 파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이 쌓여있다. 그 돌이 연결된 형상을 보면 잉카인이 땅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동물 퓨마 모양이 있고 땅 속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거대 뱀의 형상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이야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 사진 찍는 배경으로 전락했지만 잉카 전성기에는 신에 대한 숭배와 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거대 건축물이었을게다. 

잉카 유적지 치첸로

다음날 아침 6시 45분 성스러운 계곡(성계) 투어를 가야 하는 터라 얼른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전날 피곤해 채 정리하지 못한 짐을 정리한 뒤 약속 장소로 나갔다. 남미사랑 단톡방에서 마추픽추 동행을 찾다가 알게 된 지영도 성계투어를 함께 한다. 지영은 세상 무해한 사람이다. 아줌마 같은 모습이 없지 않지만 늘 크게 웃는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도 한국어로 말을 걸고 추위에 떨고 있는 생면부지 외국인에게 자기 스카프를 건넨다. 느닷없이 함께 사진 찍자는 외국인이 있으면 나야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지영은 한국어로 크게 “내가 찍어줄게"라며 그 외국인 옆자리에 선다. 잔디밭을 만나면 누워 뒹굴고 그러다 핸드폰을 분실했다 찾고 외국인과 눈만 마주쳤는데 큰 소리로 웃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괴짜가 틀림없다. 그런데 이 아줌마 같은 친구가 마음에 든다. 기본 심성에 악의가 없고 선하다. 

친체로에는 아직 건재한 잉카의 돌벽을 볼 수 있다. 

지영 뒷자리에 앉아 성계투어에 나섰다. 지영 소개로 수줍어하는 한국인 부부를 소개받았다. 페루인 가이드 이르빈은 한국인 4명의 팀명을 리(LEE)로 정했다. 이날 일정은 쿠스코를 떠나 잉카 유적지 친체로, 모라이, 오얀타이땀보, 피사크를 숙소로 돌아온다. 스페인 약탈자들에게 덜 파괴되어 상대적으로 잘 보존된 유적지다 보니 잉카의 흔적을 보고 싶은 관광객들로 들끓는 곳들이다. 가이드 이르빈이 이끄는 우리 팀은 15명이나 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도 한분 있으셔서 이르빈이 시간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게다가 내가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일정은 더 늘어졌다. 나중에 이르빈에 내게 제발 시간 맞추고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의도하지 않게 어글리 코리안으로 변신하게 된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잉카인이 종묘 재배 시험장으로 사용한 모라이. 이곳에서 대지의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친체로에서는 스페인 약탈자들이 잉카 유적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볼 수 있다. 높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분지는 갖가지 곡물을 키우는 밭으로 개간되어 있었다. 언덕 위에 잉카인은 평야를 내려다보며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조성했다. 돌로 벽을 세우고 작물의 부산물로 지붕을 얹은 옛 잉카의 마을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다. 돌벽은 허물어졌고 그나마 남아있는 석축 위에는 멋대가리는 아예 없는 스페인 중세 건축물이 잉카의 신전과 건축물을 허물고 그 위에 서 있었다. 애써 스페인 건축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잉카의 돌무기와 그 아래 분지에 형성된 작은 마을과 밭을 감상하며 늘어졌다. 거대한 산봉우리가 V 자로 겹쳐지고 그 능선 사이로 구름에 가려 잠깐씩 얼굴을 드러내는 설산이 멀리 보였다. 그 산들 앞으로는 퀼트처럼 구획단 초록과 연두색 밭들이 잇대어 펼쳐지고 빨간 지붕을 이고 선 집들이 아자기자기 늘어섰다. 

핑크빛 소금을 만드는 염전 살리라레스

두 번째 행선지 모라이에서는 본의 아니게 어글리 코리안으로 전락했다. 이곳은 잉카인들이 가운데 중앙 원을 중심으로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해당 고도와 그 고도의 토양에서 사는 미생물에 의해 어느 곡물이 잘 자라는지 시험한 잉카 종묘 시험 재배지였던 곳이다. 정중앙 원 안에서는 대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전으로 쓰이기도 했다. 수년 전 그 중앙에 누워 모습을 촬영한 한국인 여행자를 본 기억이 나서 나도 내려가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한 나머지 달렸다. 사람 키 크기 높이는 뛰어내렸다. 정신없이 뛰고 구르며 중앙으로 달려 내려갔다. 해발고도 4천 m에서 이 속도로 달리는 걸 보니 고산병은 정말 정복한 듯했다. 

오옌따이땀보 정상에 자리한 태양의 신전

한참 달리는데 어디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가이드 이르빈이 다급하게 “리!”라고 불렀다. 왜 그러지? 갸우뚱거리다 옆에 있는 표지판을 보니 들어가면 안 된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출입이 금지된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얼른 빠져나와야 했다. 내려올 때는 어른 키 높이를 뛰어 내려오면 됐지만 올라가는 건 다른 얘기다. 사다리나 계단이 있어야 한다. 여행 준비하면서 읽었던 문구가 생각났다. 튀어나온 돌을 찾아야 한다. 잉카인은 각 원형 재배지마다 튀어나온 돌을 설치해 계단 삼아 올라왔다. 저쪽 20m 떨어진 곳에 엇박자로 설치한 계단이 보였다. 얼핏 돌을 잘못 배치해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으나 엄연히 계단이었다. 그 계단을 딛고 올랐다. 한참 올랐다. 고도 4천 m 산지에서 계단을 서둘러 오르다 보니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얼른 올라가야 한다는 일념아래 무작정 올랐다. 

피사크 입구에서 내려다본 분지

전망대로 돌아왔더니 이르빈이 다시 금지 푯말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사정했다. 호루라기를 입에 문 직원은 스페인어로 한참 내게 뭐라 했다. 그래서 출입금지인지 몰랐다, 표지판을 보지 못했다,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 등 한참 해명한 뒤에야 밴에 올라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음은 성계투어의 하이라이트 오얀따이땀보다. 잉카가 스페인 약탈자에 맞서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요쇄다. 층층이 계단식 경작지가 가파르게 이어지고 정상에는 태양의 신전, 거주지, 전투 요새까지 갖췄다. 한국인 부부가 워낙 늦게 올라오다 보니 먼저 태양의 신전에 오른 뒤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콜카계곡이라는 곳이 저쪽으로 이어졌는데 사람의 왕래가 뜸했다. 그곳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한국인 4명은 여행객들과 떨어져 콜카계곡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곡물저장창고이자 전쟁 시 지휘본부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오옌타이땀보 전역이 한눈에 들어왔다. 

잉카인이 계단식 밭농사를 한 피사크

저 밑에서 이르빈이 다시 소리쳤다. “리! 빨리 내려오라.” 콜카계곡은 여행객 동선에 빠져 있는 곳이었다. 하루 네 곳을 돌아야 하다 보니 콜카계곡까지 갈 여력이 없어 이르빈은 그곳을 동선에서 제외했는데 유일하게 한국인 4명이 콜카계곡에 올라 내려다보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또 한 번 어글리 코리안의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낸 셈이다. 서둘러 4명을 데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한국인 부부가 먼저 내려가라 해서 나라도 뛰다시피 내려가 이르빈에게 사정을 몰랐다고 해명하자 이르빈은 이제 간청의 눈빛을 보냈다. 그다음 행선지 피사크에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이르빈 옆에 붙어 다녔다. 피사크를 대충 보고 다른 일행보다 먼저 밴에 도착해 앉아있다. 급속도로 친해진 미국 여성 산드라가 장난치듯 물어왔다. “리! 왜 여기 있어? 저 건너편 산에 다녀와야지?” 산드라에게 “함께 갈래?”했더니 정색하면 자기 자리에 앉았다. 

잉카의 마지막 격전지이자 요새 오옌따이탐보

말썽쟁이 한국인 하나 때문에 마음고생한 이르빈에게 급 친한 척했다. 나중에 이르빈과 친구 먹었다. 이 사람도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본의 아니게 나 때문에 격정의 하루는 보내야 했으나 헤어질 때 따뜻하게 안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내일 하루 쉬고 드디어 마추픽추 등반에 나선다. 기대가 크다. 페루에 오는 이유가 십중팔구 마추픽추라고 한다. 산 정상까지 쫓겨올라가 집단 거주지를 만들고 숨어 살다시피 해야 했던 잉카인들의 비극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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