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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02. 2023

고난과 갈등의 연속이었던 마추픽추 가는 길

4월26일(수) 산사태, 탈수증세, 멤버와 갈등까지 이겨낸 고행 

마추픽추 가는 길은 험난했다. 쿠스코에서 아침 6시 30분 밴에 탑승해 6시간 달린 뒤 이드로일렉트리카라는 작은 마을에 내려서 기찻길을 따라 11km를 걸어 아쿠아칼레엔테스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아구아칼리엔테스는 마추픽추에 오르려면 묵어야 하는 관문 도시 같은 곳이다. 스페인어로 “뜨거운 물"이라는 뜻으로 온천이 유명하다. 아구아칼리엔테스에서 하룻밤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과거 잉카인이 걸었던 계단길을 1시간 20분 동안 오르거나 버스를 20~30분 타고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해야 했다. 나는 걸어 오르는 길을 택했으나 일행 3명은 버스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트레킹 출발 지점인 이드로일렉트리카까지 가는 길을 따라 공룡 척추처럼 날카롭게 선 산들이 이어진다.

일정은 처음부터 꼬였다. 마추픽추에  승객 20명을 태운 만원 밴에 처박혀 8시간 이상을 달려야 했다. 당초 6시간 안팎이면 이드로일렉트리카에 도착해야 했으나 산사태로 도로가 막혔다. 굴삭기 2대가 서둘러 돌과 흙을 치워 차 한 대 넘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우리 밴은 아슬아슬하게 임시도로를 건너야 했다. 밴에 탄지 8시간 넘어 트레킹 출발지점에 도착했지만 바로 출발할 수 없었다. 동행 중 한 명이 탈수 증세를 보였다. 손발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며 축 늘어졌다. 체력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길 기다린 뒤 오후 4시에 출발할 수 있었다. 50세 여성 동행자 B는 좀처럼 원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처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그 사람 가방을 대신 맸다. 그럼에도 계속 늦어졌다. 급기야 산속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 4명은 핸드폰 조명을 켜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시간에 이드로일렉트리카에서 아구아테칼리엔테스로 가는 기찻길을 걷는 여행객은 우리밖에 없을게다. 목적지 아구아칼리엔테스에 다가오자 기차가 지나는 터널 2개나 나왔다. 동굴 속처럼 뚫어놓은 터널들을 지나려니 여성 동행 2명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밴 타고 가다 산사태를 만나 우리는 한참 기다린 뒤 트레킹 출발지점에 닿을 수 있었다. 

터널을 지나자 갑자기 불빛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민가 불빛이라 하기에는 희미했고 조명이라고 하기에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날아다녔다. 남자 동행 N이 “반딧불이다"라고 외쳤다. 태어나서 반딧불을 처음 본 나는 신기했다. 그 말과 함께 여기저기서 불빛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그냥 밝은 불빛이었으나 N의 눈에는 푸른색으로 보인다고 했다. 잉카의 신 파차야마가 늦은 저녁 마추픽추로 다가오는 우리 일행을 반딧불이를 보내 환영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징조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들이 쏟아졌다. 내일은 맑을 것이라는 신호였다. 기상 조건이 좋아야 마추픽추를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마추픽추에 오르지만 구름이 끼거나 비가 내려 마추픽추 전경을 다 보지 못하고 내려오는 일이 잦다. 맑게 갠 날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 며칠씩 아구아칼레인테스에 묵으며 여러 차례 마추픽추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내일도 맑을 거다. 날씨요정의 효능은 내일도 유효하리라.   

아구아칼리엔테스로 가는 초입은 나무가 지붕을 이룬 한적한 오솔길이다. 

여행 중 처음으로 일행과 갈등이 빚어졌다. 사람 하나하는 착한 사람이었으나 궁합이 맞지 않은 탓이다. 남성 N은 여성 동행자 K를 좋아했다. 그것도 너무 티 나게. ㅎㅎ 아구아칼리엔테스 레스토랑에서 K가 신용카드로 계산하자 나와 N의 음식 값을 현금으로 건넸다. N은 나중에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다음날 K가 내게 현금을 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니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헷갈려했다. 나는 주었다고 하니깐 옆에 있던 N이 K 편을 들고 나섰다. 화가 났다. 이건 K와 내가 소통하며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 N이 끼어들면서 누가 맞는지 안 맞는지 진실싸움으로 변모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 내가 그냥 한번 더 주면 되는 건데 N이 K를 대변하는 정의의 사도로 나서자 나도 발끈해 내가 돈을 건넨 증거를 보이고 난 뒤 대화를 끊었다. 그리고 둘과 소통을 중단했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로 가다보면 나오는 다리

나중에 N는 주제넘게 개입한 것을 사과했다. K도 의도와 상관없이 일이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된 것을 유감스러워했다. 다음날 비니쿤카 투어를 K와 함께 가면서 왜 내가 화났는지를 알렸다. 그리고 다시 만날 기회는 없겠지만 부디 좋은 기억만 남길 것을 당부했다. 그것을 지켜본 B는 애써 모른 척했지만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과는 서울에서 보지 않을 듯하다. 유감스럽다. 여행 동행자도 궁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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