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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02. 2023

홀로 오른 마추픽추, 환한 얼굴로 마주하다

4월27일(목) 더없이 좋은 날 마추픽추 곳곳을 샅샅이 돌았다

새벽 5시 일어났다. 일행 3명은 버스 타고 마추픽추에 오르나 나는 걸어올라야 하므로 5시 20분 숙소에서 나왔다. 새벽어둠을 뚫고 걷다 보니 마추픽추 지상 검문소에 20분 만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시간을 쟀다. 얼마 만에 오르는지 체크하고 싶었다. 잉카인이 마추픽추에 오르기 위해 걸었던 계단을 오르다 보니 맞은편 산 위에서 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선으로 내렸다. 신비로웠다. 해발 고도 2400m지만 백두산보다 높은 곳이라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르니 숨이 찼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아는 척하며 지나갔다. 나는 길을 잘못 든 포르투갈 여성을 불러서 바른 길로 안내했다. 

청명한 날 멋진 마추픽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오르자 마추픽추 입구에 닿았다. 내 티켓은 오전 7시부터 입장할 수 있었다. 입구 직원 눈치를 보다 6시 30분 표를 제시하자 들어가라고 해서 얼른 들어갔다. 일행에게는 카톡으로 먼저 들어간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구름 한 점 없는 청아한 날씨였다. 와이나픽추 산 아래로 돌로 구획된 마추픽추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고 햇살은 축복처럼 내렸다. 마추픽추를 마주한 어떤 이는 경건함을 느꼈고 어떤 이는 산정상까지 쫓겨 올라와 살아야 했던 잉카인의 비극에 안타까워했다. 사진으로나 보던 마추픽추의 모습이 두 눈으로 들어왔을 때 희열은 대단했다. 머릿속에 각인하고 싶었다.

전망대에서 한참 넋놓고 마추픽추를 바라 보았다. 

계단을 내려가 잉카인이 세운 석벽을 손으로 만지며 걸었다. 석벽을 이루는 돌들은 종이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빈틈 하나 없이 쌓여 신전을 이루고 주거지를 만들었다. 하늘로 날아갈 듯 사선으로 뻗은 돌무더기는 잉카의 하늘을 지배하던 콘돌을 본땄다. 그 앞에 콘돌의 신전이 있다. 인신공양이 행해졌을 것으로 예상하는 태양의 신전도 멋진 돌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절벽 따라서 계단식 밭이 일구어져 있고 그 위에 주거지가 반듯하게 나누어져 조성되었다. 

마추픽추 입구를 지나 전망대로 걸어가니 야마가 마중나와 있었다.

정신없이 돌다 보니 40분 만에 출구가 나왔다. 다시 돌아가려니깐 경비원이 계속 직진할 것을 종용했다. 마추픽추는 일방통행이다. 일단 지나간 곳은 돌아가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잉카 다리를 보지 못했다. 내 티켓으로는 잉카 다리를 볼 수 있었다. 출구 안내원에서 사정했더니 다시 입구로 가서 말해보라고 했다. 입구 직원에게 잉카 다리만 보고 나오겠다고 사정하자 여권을 달라고 하며 40분 주겠다고 했다. 서둘러 다시 입구를 지나 잉카 다리로 직진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느긋하게 올라온 우리 일행을 만났다. 트레킹 초반 잉카 다리에 들어가려다 만난 것이다. 일행 중 3명만 잉카다리까지 갔다. 나머지 한 명은 잉카다리 트레킹을 신청하지 않아 마추픽추 전경이 가장 잘 보이는 전망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추픽추는 신비하고 슬픈 잉카의 역사를 담고 있다. 

잉카다리까지는 10분 만에 올랐다. 절벽 중간에 툭 튀어나온 아슬아슬한 절벽 길 위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절벽과 절벽 사이를 건너던 곳이다. 그 나무로 된 다리를 잉카의 다리라 하나보다. 거창한 다리를 상상했던 터라 다소 실망하고 마추픽추 전망대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한참 촬영한 뒤 나는 내 여권을 맡고 있는 정문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일행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 코스 탐사를 시작했다. 출구 밖에서 나머지 일행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일행 N과 K는 계단을 걸어서 내려가려던 생각을 접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계단을 내려와 아구아칼리엔테스 광장까지 갔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계단은 30분 만에 내려왔다. 광장에 도착하니까 일행이 없었다. 일행 B는 늦을까 봐 한 시간 일찍 출발했고 버스를 탄 나머지 일행은 나보다 늦게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남들 다하는 앉은 자세로 한컷 

한국 음식점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이드로일렉트리카로 가는 기찻길을 걸었다. 그곳에서 우리를 쿠스코까지 안내할 밴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추픽추를 걸어서 오르내린 뒤 11km를 걷고 다시 밴에 처박혀 6시간을 가다 보니 녹초가 되었다. 일행과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밴이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일행과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더 이상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여행은 인생과 마찬가지다.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이런 경우 최선은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내 성격상 아닌 척하며 웃고 넘길 수 없다 보니 그 어색한 상황을 외면하는 게 내겐 최선이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모든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마추픽추 여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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