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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03. 2023

마침내 5천 m에 오르다

4월 28일(금) 악전고투 끝에 무지개산 비니쿤카 등정

해발 5천 m 도전에 나섰다. 비니쿤카는 해발 5천40m다. 이곳은 무지개색 산으로 유명하다. 토양 성분이 산화하면서 갖가지 색깔을 내 산이 얼핏 무지개떡처럼 보인다. 비니쿤카에 상원, 민경, 택기와 올랐다. 상원과 택기는 한인민박 숙소꼼마에서 함께 묵었다. 민경은 아르마스 광장에서 15분가량 떨어진 외곽에 숙소를 정했다. 새벽 4시 30분 여행사 앞에서 남자 3명이 만나 밴에 탔다. 쿠스코 시내를 한참 돈 뒤  마지막에 민경을 태웠다. 

비니쿤카에 도착하자 말을 탈지 걸어 오를지 결정해야 했다. 걸어 오르기로 했다. 예상대로 4천 m 넘어서자 숨이 가쁘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고 신체능력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두통이 찾아왔고 속이 메스꺼웠다. 나아가지 않는 발을 이끌고 열 발자국 걷고 5초간 쉬고 다시 열 발자국 걷고 5초간 쉬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함께 오르던 민경은 고산병 증상이 전혀 없어 산양처럼 비니쿤카 산을 뛰어올랐다. 등산에 적합하게 다리 근육이 발달되어 있고 체력도 상당했다. 지친 기색 없이 단숨에 비니쿤카 무지개 산에 도착해 사진 촬영을 위해 줄을 섰다. 상원은 말을 타고 올라 무지개 산에 일찌감치 도착했다. 가뿐 숨을 쉬며 혼자 죽을힘을 다해 올랐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산행은 처음이다. 산행에 나서면 늘 앞장서서 무리를 이끌던 내가 발을 질질 끌며 오르는 꼴이 보기 흉했다. 고산병은 남녀노소와 체력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내가 재수 없게 고산병에 취약한 인간인 것을 확인했다. 

무지개 산 앞에서 기념촬영하기 서 있는 대열을 지나쳐 해발 5천 m 넘는 비니쿤카 정상으로 향했다. 홀로 힘겨운 투쟁을 거듭했다. 등반을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찾아왔다. 위를 보지 않기로 했다. 발아래만 보고 열 발자국 걷고 쉬기를 반복했다. 한참 애면글면하다 마침내 정상에 닿았다. 생애  처음으로 해발 5천 m 고지에 발을 디딘 것이다. 정상 너머로 보이는 설산이 눈앞으로 아릴 정도로 바짝 다가왔다. 해냈다고 기뻐할 틈도 없이 머리가 찡하면서 쪼개듯 아팠다. 인증숏만 촬영하고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한참 내려가 무지개산 앞에 닿자 상원과 민경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 둘을 찍어주고 싶어 그 뒤에 서 있다가 얼떨결에 나도 한 장 찍었다. 어쩌다 보니 새치기를 한 셈이다. 

민경과 상원은 참 보기 좋다. 내가 상원이 아버지와 동갑이다 보니 상원을 아들이라고 부른다. 모난 곳 없고 선하디 선한 청년이다.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고 카메라 촬영기술도 뛰어나 여행 동행자로서는 최고의 파트너다. 민경도 상원과 동행을 이어가고 싶은 티가 역력하다. 상원이 리마를 거쳐 와라즈로 이동하려는 여정을 민경이 따라가기로 했다. 민경은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하지만 밝은 기운을 밖으로 내뿜는 매력적인 인간이다. 본인은 자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인간인지 모르는 듯하다. 귀여운 말투나 쑥스러워하며 짓는 미소가 아름다운 여성이다. 무엇보다 산에서 웬만한 남자보다 뛰어난 움직일 정도로 체력이 좋아 트레킹 상태로는 최고다. 해발 4천 m 이상 고봉에서는 확실히 나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을 자랑했다. 

민경, 상원과 어울려 놀다 보니 택기가 보이지 않았다. 트레킹 베테랑이라 벌써 올라왔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택기가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멘붕상태였다. 여행 중에 휴대폰을 잃어버린다는 건 대단한 손실이다. 휴대폰은 갖가지 인증서를 담고 있다. 숙소나 교통편 예약도 휴대폰 없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택기는 올라온 곳을 오르내리며 휴대폰을 찾아다녔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뒤늦게 무지개 산이라도 보려고 올라오는 택기를 만났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무지개 산에 올라서도 휴대폰 분실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내려와서 밴에 타서도 휴대폰에만 신경을 썼다. 도울 방법이 없으니 들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다 나도 간이 가방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지개 산 앞에 가서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여권, 지갑, 휴대폰처럼 중요한 물건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터라 가방을 잃어버려도 별 문제없었다. 물수건과 선글라스 케이스 정도가 들어있었다. 다만 숙소 열쇠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숙소 꼼마의 1층 입구, 4층 거실, 도미토리룸, 락커 열쇠를 모두 잃어버렸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 살칸타이 투어를 해야 해서 락커를 꼭 열어야 했다. 밤 9시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꼼마 사장님이 부재중이라 동생 분에게 열쇠 분실을 알렸다. 동생은 늦은 시각 열쇠 수리공을 불렀다. 자물쇠를 뜯고 락커를 열었다. 자물쇠는 새것으로 교체했다. 열쇠 4개에다 수리공 불러 자물쇠를 갈았으니 200 솔 이상 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동생분이 "마스터키가 없는 것은 저희 불찰이니 25 솔만 주세요"라고 하더라. 늦은 밤 수리공을 불러준 것도 고마운데 고작 25 솔이라니. 고맙다는 말을 거듭하며 30 솔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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