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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04. 2023

6천 m 고봉 사이 넘고 와이나픽추 오르는 트레킹 시작

4월 29일(토) 살칸타이 4박 5일 첫날... 은하수 보며 침낭 속에

마추픽추 1박 2일과 비니쿤카 여독이 채 풀리기 전에 살칸타이 4박 5일 트레킹에 나섰다. 6천 m 고봉 우만타이와 살칸타이 사이 4천 m 고지를 넘어 마추픽추까지 걷는 고강도 트레킹이다. 옛날 잉카인이 침략자 스페인을 피해 다니던 산길로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까지 이어진다. 이번에는 마추픽추 뒤로 병풍처럼 우뚝 솟은 와이나픽추까지 오른다. 다소 무리다 싶었으나 상원, 민경이라는 트레킹 멤버가 마음에 들어 강행했다.

우만타이 호수를 드론 촬영한 컷

모든 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됐다. 비니쿤카에서 쿠스코로 돌아오자마자 마추픽추 1박 2일 투어를 알아보던 상원과 민경이 살칸타이 트레킹 쪽으로 급선회했다. 마추픽추 투어를 알아본다고 하길래 여행사 문도를 소개해주었을 뿐인데 그 옆에 있다 얼떨결에 살칸타이 트레킹에 동참하게 됐다. 저녁 7시쯤 예약이 끝났고 다음날 새벽 4시 30분 트레킹 출발지로 향하는 밴을 타야 했다. 숙소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려했으나 마추픽추 동행 N과 엉킨 실타래를 푸느라 밤늦게까지 대화하다 2~3시간 자다가 일어났다.

살칸타이 트레킹 멤버들

첫날 우만타이 산으로 가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가다 우만타이 호수에 들른 뒤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잤다. 전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채 해발 4천 m 이상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다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다. 다리 피로도 금세 찾아왔고 호흡은 가빴다. 이상하리만큼 4천 m 넘어서면 신체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처음부터 뒤쳐졌다. 가이드 윌리가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자주 옆으로 와서 내 상태를 체크하고 돌아갔다. 늘 하던 대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열 발자국 걷고 5초 쉬는 방식으로 천천히 올랐다. 브라질 커플과 혼자 여행 온 브라질 청년 하나가 내 뒤에서 쫓아왔다. 트레킹 참여자가 총 11명이므로 대열 중간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우만타이 호수에 비친 우만타이 산

베이스캠프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방을 숙소에 둔 채 맨몸으로 우만타이 호수까지 가파른 길을 올랐다. 일행보다 뒤처질까 봐 5분 먼저 출발했다. 역시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고통이 심해졌다. 끙끙거리며 올라가자 민경과 상원이 따라붙었다. 뒤늦게 이스라엘 청년 아밋과 스티븐이 토끼 한 마리를 들고 다가왔다. 쿠스코 산페드로 시장에서 20 솔 주고 샀다는 새끼 토끼였다. 우리는 치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치코는 우리 일행의 마스코트가 되어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내가 아는 여성 중 산 제일 잘 타는 민경

악전고투 끝에 우만타이 호수에 올랐다. 파타고니아 피츠로이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우만타이 설산 앞에 청담색 빙하호가 있어 나름 멋이 있었다. 아밋이 파라과이에서 700달러 주고 샀다는 드론을 날려 우만타이 호수를 공중 촬영했다. 찍은 사진을 보고 우와~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비색으로 빛나는 우만타이 호수를 바라보며 그 옆 고지에 오르니 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고산병 증세가 여전한 상태에서는 욕심일 뿐이었다. 서둘러 내려와 우만타이 호수의 비취색에 빠져들었다.

우만타이 호수로 오르는 오르막길

우만타이 호수에서 내려와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자 브라질 청년 하나가 트레킹 중단을 선언하고 쿠스코로 돌아갔다. 만만치 않은 여정임에 틀림없다. 혼자 뒤처져 힘겹게 따라오더니 더 이상은 못 가게 된 듯하다. 가이드 윌리가 말 타고 가는 방안 등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 청년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트레킹 중단을 통고했다. 우리 일행은 이제 10명으로 줄었다. 아니 우리 일행은 치코까지 포함해 11명이었다.  

살칸타이 산을 보고 산길을 걷는다

첫날밤 베이스캠프 허름한 숙소에서 두터운 침낭 속에 들어가 추위를 견뎌야 했다. 지붕이 유리로 되어 있어 누워서도 밤하늘이 보였다. 낯선 곳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침낭 속에서 자는 낭만이 나쁘지 않았다. 또 언제 은하수 보며 침낭 속에서 잠들겠는가.

사흘간 친구 9명을 만들었다.

우리 일행은 소개한다. 가이드 윌리는 트레킹 베테랑이다. 쿠스코 인근 피사크 출신으로 케추어를 쓰는 어머니 영향을 받아 케추어를 말할 줄 안다. 윌리는 케추어, 스페인어, 영어를 구사한다. 15년 이상 쿠스코와 마추픽추 사이 트레킹을 오간 등산 베테랑이다. 그는 트레킹 내내 잉카의 역사와 전통을 일행에게 꼼꼼히 알려줬다. 살칸타이 설산 앞에서는 코카잎 3장을 겹쳐 잉카의 신 파차야마에게 소원을 비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짐 운반하는 말을 부리는 마부, 매 끼니 식사를 차리는 세프, 일상의 지원 업무를 맡은 인력 등 지원팀을 이끌고 트레킹 멤버 상태를 세밀히 살폈다. 일처리가 능숙하고 유연했다.

우만타이 산은 어서 오르라고 유혹하지만 보기보다 상당히 높아 가지 말라고 가이드는 충고했다

이스라엘 청년 아밋은 친구 스티븐과 함께 다닌다. 느긋하고 선하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군복무를 마치고 해외여행을 다닌다. 군복무 기간 상당히 많은 돈을 저축할 수 있다 보니 그 돈으로 전 세계 여행을 나서는 이스라엘 젊은 남녀를 여행 내내 많이 볼 수 있었다. 스티븐은 영어에 어눌하지만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에 적극적이다. 쉴 새 없이 질문한다. 한 번은 한국어에 꽂히더니 갖가지 한국어 회화를 연습했다. 둘 다 군복무 마치고 바로 세계 여행에 나섰다. 아밋과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친절하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이라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 둘이 한국에 오면 내가 가이드되고 내가 텔아비브에 가면 자기네들이 안내하겠다고 한다.

비취색 빙하호 우만타이 호수

이스라엘 청년 중 또 하나의 아밋이 있었다. 아밋 샤하프라는 23세 청년이다. 잘 생겼고 과묵해 우리 일행 민경이가 반한 친구다. 수줍어하길래 내가 노골적으로 친하려 하자 바로 마음을 열고 친해졌다. 아밋 샤하프는 나와 달리 3박 4일 일정 트레킹을 신청한지라 트레킹 사흘째 되는 날 헤어져야 했다. 둘은 함께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나는 이스라엘에, 아밋 샤하프는 한국에 새 친구가 생긴 것이다.

눈을 이고 있는 설산 사이를 넘어야 했다.

오스트리아 커플 루카스와 엘리자베스는 슈퍼커플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맨 선두에 서서 걸었고 목적지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천천히 꾸준히 걸었지만 가장 빨랐다. 이 커플은 서로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걷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반면 브라질 커플 아드리아노와 앨리스는 겉으로는 그리 친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세심히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고산지대에서 나보다 뒤처져 올라와 너무 고마웠던 친구들이다. ㅎㅎ

살칸타이 트레킹 첫날 지나온 길

상원이는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하지만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친구다. 모기에 많이 물려 고생했지만 묵묵히 걷고 느끼고 촬영하며 트레킹을 즐겼다. 민경이는 지금까지 본 여성 중에서 가장 산을 잘 탄다.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고산이든 저지대든 가볍게 날아다녔다. 참 건강한 모습이 멋진 친구다. 내가 산양(mountain goat)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수줍어하는 경우가 많지만 자기 몫은 잘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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