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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May 22. 2023

치첸이사에서 마야의 얼굴과 마주하다

5월 19일(금) 바야돌리드에서 마야와 툴텍 문명의 합동 유적지를 돌다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치첸이사로 갔다. 치첸이사는 900~1000년 유카탄 지역을 지배한 마야와 툴텍 문명의 합동 유적지다. 쿠클칸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마야의 건축물들이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다. 북부에서 번성한 툴텍 문명의 일부 세력이 유카탄 반도로 내려와 마야인과 섞여 살면서 형성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툴텍과 마야 문명이 결합한 유적지로 유명하다.

천개의 돌기둥 위에 세워진 전사들의 신전 

치첸이사의 랜드마크는 유적지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쿠쿨칸의 피라미드다. 쿠쿨칸의 깃털 달린 뱀이라는 뜻으로 마야의 주신이라 한다. 마야 신화의 제우스라고나 할까. 쿠쿨칸은 치첸이사 유적지마다 볼 수 있다. 스페인인들이 엘 카스(성)이라고 부른 이 거대 피라미드의 첫 계단 양쪽으로 쿠쿨칸이 입을 벌리고 있다. 쿠쿨칸은 제사장을 겸한 왕의 이름이기도 했다. 신의 이름을 빌려 왕권의 신성함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을 거다. 

피라미드 정면은 보수 공사해서인지 계단 모양을 갖추며 웅장하게 위로 뻗어올라가 마야 문명의 전성기를 가늠하게 했다. 반면 뒷면은 돌계단이 무너져 내려 그 속에 쌓은 돌무더기가 피라미드의 속살처럼 드러나있다. 쿠쿨칸이 입을 벌리고 있는 정면이나 입구에서 들어오면 보이는 면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옛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다른 면은 세월이 남기고 간 파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유적으로서 가치가 더 돋보였다. 

쿠쿨칸의 피라미드 계단참에 자리한 깃털달린 뱀 쿠클칸

피라미드를 보고 뒤로 돌아 후에고 데 펠로타(축구와 농구가 결합된 마야 구기) 경기장으로 향했다. 스포츠이면서 제사 행사인 후에고 델 펠로타는 손을 쓰지 않고 신체의 다른 부위를 써서 상당히 높이 설치된 고리 모양의 상대 골대에 공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끔찍한 건 이긴 팀 주장의 심장을 산채로 꺼내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산 재물은 영광으로 여겼고 그의 가족에게는 많은 재물이 제공됐다. 심장은 차크몰이라는 조각상에 올려놓았다.   

쿠클칸의 피라미드(왼쪽)와 푸에고 델 펠로타 경기장(오른쪽)에서

산 재물의 심장을 바치는 제례 행위는 중앙아메리카에서 널리 퍼진 악습이었다. 아즈텍은 산 재물의 심장을 꺼내 먹기도 했다고 한다. 마야는 먹지는 않고 꺼내기만 했다. 후에고 데 펠로타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 목을 잘라 꼬챙이에 꿰어 전시한 곳(촘판플리)도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잔악하기로는 결코 뒤지지 않은 이들이 놀랐다고 하니 어이없기도 하지만 인간 목을 꿰어 전시한 광경을 떠오르니 소름이 끼쳤다. 그 제단 벽은 해골이 양각된 돌로 마감되어 있다. 

치첸이사 랜드마트 쿠클칸의 피라미드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성한 세노테가 있다. 그곳에서도 인신공양을 비롯해 제시가 행해졌다고 한다. 제법 깊은 세노테라 들어가면 살아 나오기 쉽지 않을 듯하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세노테는 흔하다. 마야 시대에서는 세노테를 연결해 왕족을 비롯해 지배계급이 작은 카누를 타고 피신하는 통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카탄에서는 땅을 파면 세노테가 나온단다. 세노테는 식수와 용수를 구하던 곳이라 마야는 세노테를 중심으로 마을을 조성한 듯하다. 

전사들의 신전을 떠받친 돌기둥들의 잔해

푸에고 데 펠로타를 빠져나오면 천 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진 신전이라는 불리는 제법 웅장한 건축물이 나온다. 얼핏 피라미드와 닮았지만 신전 앞뒤로 돌기둥들이 신전을 지키는 전사처럼 줄지어 서 있다. 옛날에는 그 기둥 위에 지붕을 얹었다고 하니 옆으로 아주 넓게 지어진 건축물이라 하겠다. 고층 상가 건물 앞에 만들어진 쇼핑몰 같은 곳이라나 할까. 햇볕이 강한 유카탄 반도의 기후 조건을 감안하면 돌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지붕 아래를 걸으면 시원하게 신전을 관통했을게다. 돌기둥은 제법 넓은 면적의 신전 폐허를 따라 같은 간격으로 꼼꼼하게 세워져 있다. 일부는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그래도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다. 

메리다에 따로 떨어진 마야 유적지 욱스말의 랜드마크, 마법사의 피라미드

쿠클칸의 피라미드를 등지고 숲 속으로 들어가면 쿠클칸 피라미드의 미니미 같은 작은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다. 그 앞으로는 둥근 원형 돌판이 세워져 있고 그 너머로 금성을 관측한 비너스 플랫폼이 세워져 있다. 벽에는 마야의 얼굴이 담긴 문양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어 있다. 여기저기서 파는 티셔츠마다 새겨진 마야 전사들의 전투 장면이나 생활상을 담은 그림은 이 조각들에서 따왔을 거다. 이 돌에 새긴 조각에 새긴 마야인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1000년 넘은 문명의 주인공과 마주하는 기분이 묘했다. 

쿠클카의 피라미드 미니미 격인 작은 피라미드

5월 유카탄은 우리나라 한여름이다. 섭씨 38도 넘는 더위 탓에 걷는 내내 땀으로 샤워했다. 햇볕은 살인적이라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자외선을 쏟아붓고 있다. 이 더위를 견디며 2시간 치첸이사 내부를 걸었더니 녹초가 되었다. 에어컨 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메리다로 떠났다. 메리다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이 사는 유카탄 최대 도시다. 인근에 욱스말이라는 마야 유적지 외 달리 갈만한 곳은 없지만 메리다에서 이틀을 지내기로 했다.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나 할까. 

1천년 전 마야의 얼굴을 마주하다

메리다에서 어이없는 해프닝 탓에 미국 횡단이 무산될 뻔했다. 멤버 하나가 처한 특수 사정과 타협하기 힘든 내 성격이 지랄처럼 꼬여 미국 횡단은 거의 포기했다. 결국 그 멤버가 이탈하고 나는 제정신 차리고 나서 멤버 4명으로 21일간 횡단으로 방향을 겨우 잡았다. 납득이 가지 않은 지출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 고집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다. 절대 가치는 없다는 진리를 지금까지 본 그 많은 책에서 깨달았다면서.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도 상황에 따라서 바꿀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아직도 철이 없는지 쓸데없는 고집이 여전하다. 아슬아슬한 위기에서 벗어나 미국 횡단 계획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철현아~ 이제 철 좀 들자. 나라 팔아먹지 않는다는 원칙 빼고는 상황에 맞추면서 살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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