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7일 폭포, 바위, 숲 다 있는 곳에서 인생 트레킹
르무어 숙소를 출발해 제3의 동행 나윤을 픽업했다. 나윤은 텍사스 오스틴대학에서 토목공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다. 방학 맞아 하와이, 알래스카, 시애틀을 여행하고 미국 횡단에 합류했다. 나윤은 기차로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 도시까지 이동해 우리 일행을 기다렸다. 첫인상은 공부 잘하게 생긴 수수한 차림의 유학생이었다. 밝고 언변이 좋아 일행과 봄눈 녹듯 녹아들었다. 당초 우려했던 것과 달리 유들유들한 성격이라 다행이다.
미국 횡단 절반의 이유, 남쪽 출입구 통해 요세미티에 들어섰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방문자센터까지 설정해 두었는데 남은 시간은 1시간이 넘었다. 공원 입구부터 중앙까지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공원이라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길게 넘은 침엽수들이 줄지어 서서 우리 일행을 반겼다. 구불구불 숲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달리자 엄청난 크기 바위가 구름을 이고 길 정면에 나타났다. 엘 카피탄.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1천 m 넘게 치솟은, 세계 최대 화강암 바위다. 암벽등반 명소로 남동과 남서 쪽 등반루트에 인간들이 달라붙어 오른다.
다시 꼼꼼히 보자고 다짐하고 방문자센터로 향했다. 곧 방문자센터가 문을 닫을 예정이라 센터를 비롯해 주요 명소가 몰려 있는 요세미티 밸리로 서둘러 움직였다. 다음날 트레킹 루트 정보를 파악하고 미국 국립공원 여권 스탬프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힌 광경을 보면 내려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저 멀리 왼쪽으로 엘 카피탄이 자리하고 맞은편으로 폭포가 한줄기 내리고 그 사이에는 산들이 겹쳐지며 멀어지는 광경이란. 요세미티 최고의 전망이라고 한다. 전망대에 잇댄 인도를 오르내리며 한참 머물렀다.
문 닫기 직전 방문자센터에 도착했다. 요세미티 폭포 트레일과 버널 폭포 트레일 루트가 가장 아름답다는 정보를 얻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요세미티 곳곳을 눈에 담고 싶었다. 거칠게 때로는 우아하게 맨살을 드러낸 화강암 바위들이 그 앞에 형성된 늪지 수면에 반사되고 있었다. 고개를 들면 화강암 바위가 압도적인 자태로 다가서고 고개를 숙이면 늪지 위에 어른거리는 화강암 바위가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내리는 식으로 공원 곳곳을 염탐하듯 돌아다녔다. 하프돔을 어렵사리 찾아서 직관하고 엘카피탄을 다시 찾아 프리솔로 코스를 보며 전율했다.
다음날 일행 셋은 쉬운 코스 위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 혼자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어퍼 요세미티 폴스(Upper Yosemite Falls) 트레일에 오르기로 했다. 요세미티 폭포는 2단이다. 위 폭포와 아래 폭포가 굉음을 내며 하얀 포말과 함께 엄청난 물줄기를 내린다. 지난겨울 강설량이 평소 2배 이상이라 요세미티 정상에는 많은 눈이 쌓여 있는데 비가 내리자 엄청난 물을 쏟아내고 있다. 로어 폴스까지는 20분가량 걸으면 닿을 수 있지만 어퍼 폴스 넘어 폭포가 시작되는 곳까지는 가파란 오르막을 3시가량 올라야 한다. 안내책자에는 왕복 6시간 걸린다고 나와 있다.
일행과는 로어 폴스까지 동행했다. 로어 폴스도 장관이었다. 서쪽 입구로 들어오는 길에 있던 브라이덜베일 폭포 못지않은 장관이었다. 신부 면사포 폭포라는 이름에 걸맞게 브라이덜베일 폭포는 길게 그리고 우아하게 쏟아져 내렸다. 로어 폴스는 그 위로 어퍼 폴스의 장관을 구름으로 가리고 구름 아래서 느닷없이 물을 내리고 있었다. 굉음이 물과 함께 내렸다.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이 야생 염소처럼 여기저기 출몰했다. 수학여행을 요세미티로 오다니 복 받은 녀석들이다.
일행과 헤어지고 어퍼 폴스 트레일 입구 앞에 섰다. 좁은 산길을 30분가량 오르자 오른쪽으로 맞은편 화강암 바위 산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왔다. 올려다보던 거대 바위 산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저 멀리 겹쳐지며 멀어지는 산들이 구름 속에 숨었다 나타났다 하며 내게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다. 눈을 깔자 산 앞에 펼쳐진 늪과 숲이 미니 세트처럼 펼쳐졌다. 요세미티 빌리지에 주차된 차량들이 미니카 같고 호텔 안에 있는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세미티의 숨겨진 모습을 재밌어하며 한 시간가량 오르자 어디선가 굉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굉음을 쫓았다. 숲 사이로 어퍼 폴스가 나타났다. 폭포가 튕겨낸 물이 부슬비처럼 쏟아졌다. 사이렌에 이끌리듯 폭포 쪽으로 끌려갔다. 지각이 깨지는 듯한 굉음을 내며 엄청난 양의 물이 부서지듯 쏟아졌다. 그 원시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반팔을 입고 있어 드러난 팔 위로 폭포물이 맺혔다. 시원했다. 이내 추웠다. 방수재킷을 꺼내 입고 폭포가 시작하는 정상을 향해 걸었다. 폭포를 오른쪽에 두고 오르는 등반이라니.
폭포를 지나자 안개가 가득했다. 구름 속으로 들어선 것이다. 등산로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르막 길을 1시간 30분가량 오르자 짙은 안갯속에 숨은 폭포 정상을 볼 수 있었다. 폭포 물은 거칠 것 없이 흘러 벼랑 끝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무너져 내렸다. 폭포 물은 벼랑을 만나 낙하하기 전까지 여기저기 바위를 굽이치며 맹렬하게 흘렀다. 안개가 더 짙어졌다. 자칫 하산길을 잃어버릴 수 있어 서둘러 하산했다.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 미국인 등산객들을 만나 간신히 길을 잡을 수 있었다. 달리듯 내려오자 총 등산시간은 4시간이었다. 안내책자에 나온 등산 시간보다 2시간이나 빨랐다. 중남미 트레킹에서 많이 단련됐나 보다.
요세미티 빌리지에서 일행을 만나 스테이크 용 쇠고기와 맥주를 사서 숙소로 들어갔다. 성재가 해주는 스테이크를 안주삼아 맥주를 2병 마시니 피로감이 갑자기 찾아왔다. 왕복 3시간 운전에다 4시간 산행이 피곤했나 보다. 결국 씻지도 못하고 뻗었다. 새벽 4시 일어나 샤워 마치고 모닝 맥주 한 병 마시며 미국 시골마을 마라포사의 아침을 맞았다. 이 나른한 평화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