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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n 07. 2023

미국 횡단 첫날, 캘리포니아 동부 해안도로 따라 달리다

6월5일(월) LA에서 샌프란시스코 향해 북행하다 경찰 심문받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출발 앞두고 악재가 생겼다. 페루 쿠스코부터 왼쪽 복숭아뼈 근처에 보기 흉한 돌기가 자라고 있었다. 손으로 뜯어내다 2차 감염이 됐는지 더 크게 커지며 검붉어졌다. 처음에는 팥알만한 종기 같았으나 점차 자라나 M&M 초콜릿만큼 자라 검붉게 엉겨 붙었다. 얼핏 악성 흑색종처럼 보였다. 코리아타운 내 피부과를 검색했다. 평점이 가장 높은 마이클 김 피부과로 일어나자마자 갔다.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한 터라 어렵사리 예약을 잡았다. 존스홉킨스 의대와 하버드 의대를 나왔다고 하니 실력만큼은 신뢰할만하다고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마이클 김 전문의는 해당 부위를 보더니 사마귀라고 진단하고 바로 제거했다. 진료실에 들어간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사마귀는 깨끗하게 제거됐다. 

산타바바라에서 태평양을 마주하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렌터카를 인수하고 동행을 픽업한 뒤 바로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타고 올랐다. 드디어 21일간 미국 횡단의 장정이 시작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 산타모니카 해안으로 빠진 뒤 캘리포니아 1번 도로로 진입했다. 왼쪽으로는 태평양 동쪽 바다가 따라왔다. 기후변화 탓에 캘리포니아는 6월 초임에도 춥고 날이 궂었다. 햇빛은 숨었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고 기온은 낮았다. 우중충한 날이지만 태평양 동부 해안을 바라보며 쭉 뻗은 해안도로를 달리니 미국 횡단에 들어갔음을 실감했다. 

해군기자 마을 산타바바라  

숙소를 르무어라는 작은 마을에 잡았다. 요세미티와 멀지 않은 곳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600 km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말리부 해안이 펼쳐졌다. 오른쪽으로 높은 구릉이 펼쳐진 곳에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했다. 그 자리라면 태평양이 내려다볼 수 있어 경관이 기가 막힐 듯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호화주택도 말리부 해안 절벽 위에 자리했다. 싸늘한 날씨에도 바다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보니 말리부는 지나치기로 했다. 날이 추워 바닷바람을 맞고 싶지 않았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말리부 해안의 경관으로 충분했다. 날이 좋은 날 햇살이 쏟아지는 말리부는 천국일 게다. 

레바논 이민자가 경영하는 카페 돌체

말리부를 지나 산타바바라로 향했다. 태평양 쪽으로 선착장이 있고 크고 작은 요트들이 떠 있는 스턴스 부두가 목적지였다. 한 시간 달리니 Stearns Wharf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선착장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로 식당과 가게를 올려 오래된 항구의 풍모가 정겹게 다가왔다. 선착장 끝까지 나아가 시야를 막는 방해물 없이 올곳이 태평양과 마주했다. 추위 탓인지 선착장은 한적했다. 동네 청년 2~3명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산타모니카 해변보다 한갓져서 좋았다.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달리다 말리부에서

산타바바라를 지나자 길은 산으로 접어들었다. 산길에 오르자 도로 양쪽으로 초원이 펼쳐지는 듯하더니 키 작은 포도나무들이 가지런히 이어진 포도밭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예상치 못한 장관이었다. 산타모니카나 말리부, 산타바바라를 지날 때는 그 명성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면 산길에서 펼쳐진 경관은 기대치 않은 거라 훨씬 인상적이었다. 감탄을 거듭하다 솔뱅에 도착했다. 덴마크 이민자들이 캘리포니아에 세운 덴마크 풍 마을이다. 고향을 떠나온 이민자들이 고향을 잊지 못하고 덴마크 식으로 지붕을 얹고 집의 뼈대를 세우고 마을을 설계했다. 5년 전 덴마크에서 본 마을의 모습이 너른 평지 위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레바논 이민자가 운영하는 카페 돌체에 들어가 서아시아 풍 커피와 과자를 맛보았다. 커피 맛은 강했고 과자는 달았다. 

산타바바라에서 르무어 가는 길에 있는 덴마크 마을 솔뱅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사위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야간운전을 시작했다. 250km 달려야 숙소가 있는 르무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야간에 낯선 도로를 달려야 했지만 피로감은 멕시코 유카탄반도보다 훨씬 덜했다. 도로가 워낙 잘 정비되어 있고 운전자 친화적이다. 밤이지만 표지판은 눈에 잘 들어왔고 중앙 차선은 선명했다. 밤 10시30분 넘어 르무어 숙소에 들어갔다. 퇴역 미국 해군장교가 주인장인 집 치고는 아주 좋았다. 깨끗했고 거실은 넓었고 침실은 깔끔했다. 우유, 계란, 시리얼, 아이스크림까지 냉장고에 잔뜩 채워놓고 우리에게 맘껏 먹으라고 했다. 최고였다. 

추운 날씨 탓에 한적한 산타바바라

24시간 편의점에서 식수를 사려고 나갔다. 느닷없이 경광등을 켠 경찰차가 뒤를 쫓아왔다. 사이렌 소리도 없고 서라는 경고음도 없어 그냥 갔더니 갑자기 사이렌을 울렸다. 서둘러 인도 옆 차선에 차를 세웠다.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낯선 이방인에게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하고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디서 왔는지 르무어 방문 목적, 체류 기간, 목적지 등을 세세히 물었다. 내 대답이 끝나자 옆자리에 탄 준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물었다. 준수는 이미 패닉에 빠진 얼굴이었다. 버벅 거리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대신 답하려 하자 동행에게 물어보니 내게는 조용히 하라고 했다. 준수는 당황해 경찰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지만 이 정도까지 엉망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사람은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무선으로 여기저기 묻어니 내게 다음부터는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따라오면 무조건 서라고 경고했다. 한국과 달리 경찰차가 따라온다는 건 서라는 지시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운전하다 보니 몰랐다고 변명하자 면허증을 돌려주고 가라고 했다. 식겁했다. 도로주행에서 처음으로 경찰 심문을 받은 경험이란. 겁났지만 짜릿했다. ㅎㅎㅎ 

산타바바라 강태공

첫날 먼 거리를 달려온 데다 이른 아침부터 동분서주한 터라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곯아떨어졌다. 흉측하게 검붉게 돋아난 돌기가 사마귀에 불과하다는 게 다행스러웠고 별 탈 없이 첫날 먼 거리 여행을 안전하게 마친 게 감사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르무어 거리를 한 시간가량 산책했다. 평범한 미국 시골마을이다. 생활하기 불편하지는 않지만 솔뱅만큼 멋진 곳은 아니다. 내일은 제3의 동행을 만난다. 홍일점 나윤이다. 기대된다. 어떤 친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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