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에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걷다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서울 도심은 금요일 밤 눈을 떴다. 어둠이 내리며 옅은 주황색 햇볕까지 가시자 서울 도심은 불빛과 인파의 소음으로 소란해졌다. 초여름 한낮 더위에 시달리다 초저녁 쪽잠에서 깨 활력을 되찾은 사람 같았다. 도심을 오가는 이들은 부산했다. 하지만 홍대입구처럼 인파 속에서 오고가기 힘들 정도로 북적이지 않았고 강남처럼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인파의 다급함이 없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행사가 시청부터 광화문까지 채웠다. 시청 앞 잔디 마당에서는 대형 스크린이 세워져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 출정식이 생중계됐다. 축구팬들 환호가 시끄러운 음악에 뚫고 시청 주변에 퍼졌다. 그새 러시아월드컵 개막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횡단보도 건너 멀리서 국가대표 주전공격수 손흥민과 플레이메이커 기성용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시청 앞에서 잠깐 분위기에 취했다가 걸어서 무교동을 지나 청계천에 도착했다. 다리 왼쪽에는 청계천 수원지 소라고동 앞에는 늘 그렇듯 북적였다. 다리 밑으로는 일직선으로 볼품 없게 뻗은 청계천 하류를 따라 2~3명씩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물비린내는 소곤소곤 거리는 말들 속에 배어 다리 위까지 올라왔다. 아이들은 불빛을 내는 장난감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캠코더에 청계천의 밤을 담았다.
청계천을 뒤로 하고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광화문 앞 교보문고 종로쪽 출입구에는 존 카니 감독의 영화 <비긴어게인>을 상영하고 있었다. 교보문고 입구 쪽에 간이 스크린을 세워놓고 영상기로 영화를 쏘았다. 계단 모양으로 좌석에는 연인, 친구, 직장 동료 등이 모여 키에나 나이틀리의 경쾌한 웃음과 애덤 리바인의 음악에 취했다.
교보문고 안에서도 작가 김훈의 공무도하가를 읽었다. 노독희가 란제리 차림으로 중국 작가 책을 손보는 대목까지 보는데 베스트셀러 <말의 품격>과 <언어의 온도>의 작가 이기주씨와 간담회 겸 사인회가 열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교보문고 한쪽 벽면을 따라 길게 늘어선 독서대에 이기주씨를 보려는 이들이 모여 들었다. 작가 이기주 작품을 본 적이 없는 데다 북적이는 게 싫어서 서둘러 교보문고를 나왔다.
교보문고에서 집까지 걸었다. 30분가량 걸렸다. 역사박물관 앞을 지나 경희궁에 닿자 숲이 뿜는 수풀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한때 밤 늦은 시각 경희궁에 숨어 들어 잔디밭에 드러누워 하늘에 뜬 얼마 안되는 별을 헤아린 적이 있다. 그때 함께 누웠던 여인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ㅋㅋ
난 서울 도심이 좋다. 지난 6년간 서울 도심을 벗어나지 않은 곳에 거주지를 두는 이유다. 뉴요커는 맨해튼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난 서울 도심에서 영감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아파트 앞 편의점에 들러 수입맥주 4캔을 사서 들어왔다. 맥주라도 한잔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