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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n 14. 2023

마약 무방비 도시, 포틀랜드

6월12일(월) 최악의 여행지에서 갈등 봉합

포틀랜드 여행은 최악이었다. 명물로 소문난 장미정원은 10분 돌아다니면 얼추 다 볼 수 있는 면적에 난생처음 보는 장미 품종을 줄지어 심어놓은 작은 정원에 불과했다. 그리 신기하지 않은 형형색색 장미가 피어있었으나 장미꽃에 무내한이다 보니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품종 개량해 화려한 꽃보다 산이나 들에 피는 야생화를 선호하는 터라 화려한 장미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장미밭에서 일행과 한 시간 노닥거리다가 포틀랜드 도심으로 향했다. 워싱턴 주와 캘리포니아 주 사이 태평양에 연한 오리건 주의 주도가 포틀랜드다. 성재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앉아있겠다고 해서 준수와 둘이 돌아다니고자 했다. 

포틀랜드 명물이라는 장미정원 왜???

도심 여행에 나선 지 10분 만에 성재가 있는 스타벅스로 철수했다. 길거리 곳곳에 마약에 취해 쓰러져 자는 노숙자가 즐비했고 청년 4~5명이 떼를 지어 길거리에서 마약을 사고팔았다. 마약에 취해 돌아다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멕시코시티에서 밤 11시 넘어 돌아다녔을 정도로 겁이 없는 나도 겁났다. 준수는 이미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위험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뛰다시피 해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서둘러 워싱턴 주 밴쿠버(캐나다 밴쿠버 아님) 숙소로 가서 체크인했다. 키 큰 나무 앞으로 잔디밭이 예쁘게 가꾼 고급 저택이었다. 가스 벽난로에 불을 붙이자 거실은 따뜻해졌고 4개나 되는 침실은 아주 고급스러웠다. 

세계 최대 독립 서점 파월북스가 포틀랜드 시내 중심가에 있다

갈등의 씨앗이 자라더니 드디어 종기가 터졌다. 커뮤니케이션 실패로 인한 오해가 겹치다 보니 상대의 불만을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었다. 종기는 사소한 계기로 터졌다. 나윤이 장미정원을 가자고 했고 성재는 장미정원에 너무 실망했다. 준수까지 성재 편에 섰다. 나윤에게 장미정원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라고 하고 우리 셋은 도심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나윤이 화를 냈다. 남자 셋이 자기 두고 도심을 다녀오겠다는 건 따돌림이라 생각한 거였다. 성재는 나윤의 태도에 화를 냈다. 나윤의 운전실력이 형편없는 것도 불만이었다. 준수는 나윤이 너무 자기 생각대로 여행 일정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촉즉발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을 토로할 듯했다. 

포틀랜드는 수제가 맥주가 유명하다. 맥주 양조장에 들러 수제맥주를 샀다. 한인마트 가서 삼겹살도 샀다. 삼겹살 굽고 수제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시도했다. 갈등의 뿌리가 뽑히지 않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봉합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제멋대로 자라온 이들이 서로의 취향과 기호를 맞춰가며 여행한다는 건 상당히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여행은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갈등이나 이견을 조정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갈등을 해소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스킬도 는다.

워싱턴 주 밴쿠버 소재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포틀랜드 수제 맥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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