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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n 14. 2023

레드우드 국립공원, 거인의 숲을 거닐다

6월11일(일)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 자이언트 세콰이어 서식지

샌프란시스코에서 101번 도로 타고 북쪽으로 4시간가량 달렸다. 태평양 해안을 왼쪽에 두고 달리다 보니 잊을만할 때쯤 태평양이 얼굴을 비췄다. 밤 10시 넘어 유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모텔6에 체크인했다. 준수와 나윤이 한 방을 썼고 나는 성재와 방을 공유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여섯 시간 걷고 4시간 이상 운전했으니 피곤할만하다. 일행 넷이 여행 욕심이 많아서인지 연일 강행군이다.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 피로도가 높아지면 일행 간 갈등이 생길 확률이 커진다. 벌써 갈등의 싹이 자라는 게 보인다. 여행의 피로는 실수나 오해가 빚은 작은 관계의 상처를 큰 종기로 커지게 한다. 곧 종기가 터질 듯하다. 

다음날 일찍 레드우드 국립공원으로 갔다. 아침나절 바다에 안개가 자욱하고 추웠다. 날씨 탓에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절경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다. 정오가 다가오면서 햇살이 비추자 안개가 걷혔다. 레드우드는 세상 밝은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페루 와라즈 트레킹에서 만난 미국인 피터가 요세미티나 옐로스톤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추천한 곳이 레드우드다. 레드우드를 방문하자고 일행을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일행 모두 레드우드의 경치에 감동했다. 준수는 복잡한 요세미티보다 한적하고 아득한 레드우드가 훨씬 낫다고 극찬했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캘리포티나 주 북서쪽 해안에 연한 자이언트 메타세쿼이아, 레드우드의 숲이다. 레드우드는 소나무 목 삼나무 과로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무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나간다. 100m 이상 자라는 나무가 즐비하다. 나무 계의 모델이라 할까. 거대한 신 하이페리온의 이쑤시개 같다고나 할까. 레드우드가 곧게 자라는 이유가 있다. 비탈진 길에 뿌리를 두고 비스듬히 자랐다가는 일정 크기 이상에서 자기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허리가 부러져 성냥개비처럼 꺾여버린다. 오로지 곧게 자라는 나무들만이 자기 키의 하중을 버텨내며 하늘로 치솟는다. 

레드우드 숲 안에 들어가면 거인의 나라에 닿은 걸리버로 변한다. 엄청나게 거대한 나무 사이에 서면 다람쥐만큼 작은 동물로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숲에는 나무의 텁텁한 향이 가득하다. 무성한 나무 가지들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쏟아져 들어와 신비감을 더한다. 나무 외피에 손을 대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건조하다. 곳곳에 벼락 맞아 속이 탄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속 안은 불탔으나 외피가 담고 있는 수분 덕에 겉은 여전히 푸르러 생명을 잇는 나무가 많다. 두터운 갑옷을 두른 성장한 장군처럼 치솟기도 하고 껍질 없이 근육 섬유처럼 줄기가 뒤엉켜 올라가는 나무를 볼 수 있다. 


숲은 완전했다. 거칠 것 없이 하늘 향해 치솟는 나무들이 숲의 그늘을 만들어내고 무성한 가지와 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 숲의 조도를 적당하게 유지한다. 숲의 그늘 아래서는 엘크들이 풀을 뜯고 새, 도마뱀, 다람쥐가 바삐 움직인다. 잎으로는 안갯속에서 수분을 얻고 뿌리로는 땅 속 깊은 곳까지 뻗어나가 물을 흡수하는 터라 레드우드 숲은 건조하지 않다. 물기가 묻은 나무 향이 숲을 감싸고 있어 들이쉬는 숨마다 나무의 맛과 향을 음미할 수 있다. 

톨트리스(키 큰 나무 숲)와 레이디 버드존슨 트레일 코스를 걸어서 다녔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베스트 코스다. 3시간가량 트레일을 마치고 북쪽으로 40분간 달려 제데디아 스미스 주립공원으로 갔다. 그곳은 서식하는 나무들은 더 크고 웅장했다. 벨로시랩터나 티라노사우르스가 숲 속에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성인 남성 여섯 명가량이 손을 잡고 둘러싸도 넘칠 만큼 큰 지름과 끝이 보이지 않은 나무들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었다. 곳곳에 뿌리째 뽑혀 넘어진 나무들이 말라가면서 숲의 원시성을 더했고 썩어가면서 새 세대를 위해 자양분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본 숲 중 단연 최고였다. 톨트리스나 레이디 버드 존슨 숲 트레일도 멋졌지만 시간 없는 이라면 제데디아 스미스 주립공원을 먼저 방문할 것을 권한다.

요세미티가 바위와 폭포라는 무생물이 만들어낸 경이라면 레드우드는 나무라는 생명체가 엉켜서 연출하는 절경이다. 위태롭게 깎아지르는 바위와 무시무시하게 쏟아져내리는 폭포가 만들어내는 절경이 감탄스럽다면 나무들이 거대하게 자라면서 만들어낸 숲은 따뜻하고 아득한 풍경을 안으로 담고 있다. 요세미티가 외경의 대상이라면 레드우드의 사랑의 상대라 하겠다. 고대 원주민에게 요세미티는 숭배의 대상이라면 레드우드는 삶의 터전이지 않을까 싶다. 미국인은 샌프란시스코에 마음을 두고 온다면 나는 레드우드에 내 마음을 남겨뒀다. 아쉬움에 여러 차례 돌아보면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다음 행선지 포틀랜드를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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