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토) 피셔맨스와프부터 베이브리지까지 샌프란시스코 만따라 걷다
샌프란시스코 둘째 날. 도심을 홀로 걸었다. 취향이 제각각이라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오후 6시 주차장에서 보기로 했다. 도심 중앙에 주차하고 베이브리지까지 걸었다. 적갈색 금문교와 달리 베이브리지는 하얀색 현수교다.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다리다. 유명세가 금문교보다 떨어지지만 오클랜드와 샌프란스시코를 잇는 다리다 보니 기능 면에서는 금문교보다 낫다. 금문교 넘어서는 부촌인 티뷰론과 소살리토가 바다 넘어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조망한다.
베이브리지를 뒤로 하고 해안 따라 걸었다. 주말 맞아 샌프란시스코 해안가는 인파로 북적이고 활기가 넘쳤다. 길거리에서 큼지막한 소시지를 양파와 피망을 곁들여 구운 음식을 10달러에 사서 걸으며 먹었다. 해안 쪽으로 바짝 붙어 걷다가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 들어갔다. 주말 시장이 서서 갖가지 샌프란시스코 특산품을 팔고 있었다. 글루텐 없는 소박한 파이를 파는 판매대에서 독살스럽게 단 딸기 파이를 먹었다. 달다 못해 입 안이 아릴 정도였다. 덕분에 오후 내내 칼로리가 부족할 일은 없을 듯했다.
39번 부두에 닿자 알카트라즈 가까이 다가왔다. 수영해서 건널 수 있는 것 같은 거리였다. 이곳이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었다니 이상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조류가 빠르고 물이 차서 수영으로 건너기 어렵다고 한다. 북적이는 상가를 가로질러 나가자 난간 너머로 배를 까고 누워있는 바다사자가 보였다. 그 너머로 바다사자 무리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39번 부두 명물로 꼽히는 바다사자 서식지다. 서로 대가리하는 녀석들부터 햇볕 쬐며 자빠져 자는 녀석까지 온갖 포즈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39번 부두를 지나자 바로 옆에 피셔맨즈와프가 나왔다. 샌프란시스코 첫날 클램차우더를 먹은 식당 부댕이 있는 곳이다. 알카트라즈로 떠나는 페리를 타기 위해 줄 선 인파를 지나 방향을 도심으로 틀었다. 해안에서 빠져나오자 차이나타운 쪽으로 사선으로 뻗은 길을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규모가 엄청났다. 과거 골드러시 시절 미국은 중국 이민자들을 대거 투입해 서부 철도를 부설했다. 당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살아남은 이민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고 미국 서부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건설했다. 거리에는 한자가 적힌 가게들이 늘어섰다. 중국식 기와를 이은 전각이 눈에 들어오는 공원에서는 중국인 노인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을 빠져나오자 고층빌딩들이 밀집대형을 이루며 솟았다. 유료주차장에 주차한 차에서 10분가량 기다렸더니 일행 셋이 왔다. 바로 유레카라는 마을을 향해 떠났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에서 한 시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모텔6에서 2인 1실을 빌려 잤다. 비교적 깔끔하면서도 싸서 여행객에게 인기 있는 모텔 체인이다. 나윤이 4시간가량 차를 몰았다. 느리지만 안정적이라 옆좌석에서 자면서 올 수 있었다. 당분간 운전을 맡겨 빨리 미국에서 운전에 익숙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장거리 운전이 이어지는 날이 많을 거다.
샌프란시스코는 해안이 아름다운 도시다. 규모는 로스앤젤레스보다 작지만 다양한 색깔이 알록달록하게 꽉 찬 도시 같다. 도시를 이루는 요소들이 아기자기하고 나름 품위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텐더로인 거리처럼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위험한 곳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예쁜 도시다. 실리콘밸리를 배후에 둔 첨단도시지만 언덕 위로 케이블카가 달리고 트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기선이 도심 하늘을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그재그로 난 언덕길 따라 꽃들이 피어나는 롬바르 가에서 바다까지 뻗어내리는 길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언덕길 따라 걷다 보면 파스텔톤으로 페인트칠한 작은 집들이 좌우로 늘어섰다.
멋진 도시다. 미국인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마음을 두고 온다고 했다. 이방인인 나로서는 마음까지 두고 올 일은 아니지만 뇌리에 멋진 도시로 남을 듯하다. 다시 오고 싶다. 그때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만을 따라 걸으며 걸거리 소시지를 함께 먹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