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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현 Jun 22. 2023

옐로우스톤, 신이 산 지구에 만든 최고의 걸작

6월16~19일 궂은 날씨에도 사흘간 탐사

오전 9시 15분 워싱턴 주 레이니어 국립공원 인근 마을 팩우드를 출발해 오후 8시 30분 몬타나 주 뷰트에 도착했다. 시차 경계선을 넘으면서 1시간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11시간가량을 달렸다. 뷰트는 옐로우스톤 북쪽 입구와 가까운 작은 마을이다. 가깝다고 하지만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달려야 했다. 국립공원 안이나 가까운 숙소는 비싸다. 한 시간 이상 떨어져 있어야 4인 동행이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으로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자동차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모텔 6에 묵었다. 11시간 이상 운전한 탓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옐로우스톤으로 출발했다. 북쪽 입구로 들어가 국립공원 입구마을 가르디너에 도착했다. 방문자 센터부터 들어가 레인저에게 공원 내 들러야 할 곳과 걸어야 할 곳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레인저는 옐로우스톤 여행 정보를 간략하게 설명한 뒤 초행자에게 맞는 트레킹과 드라이브스루 코스를 알려줬다. 옐로우스톤에 오자마자 방문자센터에 들러 레인저에게 최신 여행정보를 듣는 게 여행을 설계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옐로우스톤은 1872년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초거대 화산 위에 놓여 있다. 옐로우스톤 화산이 터지면 지구 생명체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 한다. 다행히 화산이 워낙 커서 한방에 응축해 터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화산 속에서 터져나가려는 힘이 모여 한꺼번에 분출하는 것이 화산 폭발인데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 깔고 있는 화산은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터질 때까지 힘이 모이기 전에 간헐천이나 온천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고 한다. 지금도 간헐천, 온천, 진흙탕, 분기공이 공원 곳곳에서 에너지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옐로우스톤 화산이 마지막으로 터진 건 63만 1천 년 전이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내 최고봉은 높이 4300m 워시번 산이다. 산 아래로 연두색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침엽수림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저 멀리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목초지 곳곳에 크고 작은 호수와 연못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목초지에서는 들소와 엘크가 풀을 뜯고 숲 속에서는 그리즐리 곰, 검은 곰, 늑대 같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다. 인간이 옐로우스톤에 발을 들인 건 1만 3천 년 전이다. 

옐로우스톤 대표 여행 상품은 간헐천이다. 전 세계에 간헐천이 800개가량 있는데 그중 500개나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안에 있다고 한다. 온천수나 마그마가 땅 속에서 모이다가 땅 위로 한꺼번에 솟아 나오는 곳이 간헐천이다. 여기저기 산재한 간헐천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힘을 모았다가 한번 터져 나오면 수백 미터씩 솟구치기도 한다. 간헐천들은 부글부글 끓고 황화합물 연기를 뱉어내고 느닷없이 솟구치며 자기가 살아있다는 걸 쉴 새 없이 증명한다. 

간헐천들을 보며 옐로우스톤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면 풀(온천수 연못)이나 스프링(온천수 샘)에서는 옐로우스톤의 화려한 색감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연못이나 샘은 대부분 옥빛이다. 부글부글 물이 오팔이나 터키 같은 보석 색깔을 내 아름답다. 물속에 녹은 황화합물이 다른 가시광선을 모두 흡수하는데 오로지 푸른색만 흡수하지 못하고 반사한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푸른색만 인지하다 보니 푸른 것이다. 황화합물의 농도에 따라 짙고 옅음이 다른 뿐이다. 푸른색 연못 주변에 노랑, 주황, 녹색 같은 화려한 색은 그 연못에서 서식하는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낸다. 그랑 프리즈매틱 스프링이나 모닝 글로리, 크로마틱풀처럼 옐로우스톤을 소개하는 책자에 담긴 총천연색 연못의 색은 황화합물의 빛 반사와 미생물들이 합작한 작품들이다. 

옐로우스톤 안에서 간헐천이 많이 모인 곳은 올드페이스풀과 노리스 구역이다. 올드페이스풀이나 노리스 트레일 코스를 걷다 보면 간헐천이 솟구쳐 오르고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고사목 배경으로 옅은 하늘색 연못을 보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 그곳에 들어갔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 워낙 강한 산성인 데다 섭씨 100도 넘는 열탕이다.

레이크 빌리지는 바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넓이의 호수를 끼고 있다. 호수 주변에 숲이 울창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호수에는 파도가 친다. 호수로서 정체성을 잊고 자기가 바다인지 착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날이 궂어 옐레펀드백 마운틴에 오르지 못한 게 아쉽다. 코끼리등 모양 산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면 절경이라고 한다. 비바람을 맞다 보니 저체온증을 걱정할 만큼 온몸이 적어 추웠다. 6월 하순 옐로우스톤 날씨가 이 모양이라니 기후변화가 이미 재앙으로 우리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호수만 바라보고 입맛만 다시다 발길을 돌렸다. 

캐넌 빌리지에서 동행과 헤어졌다. 동행 셋은 차로 이동하며 캐넌 빌리지 경관을 즐기고 싶어 했다. 나는 걷고 싶었다. 동행 셋은 차로 캐넌 빌리지 가운데를 흐르는 강의 북쪽을 따라 오르고 나는 강의 남쪽을 따라 걷기고 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자 뭐에 홀린 듯이 주차장 앞에 펼쳐진 고개를 넘었다. 캐넌 빌리지 남쪽림과 반대 방향이었다. 고개를 넘자 보라색 꽃과 노란색 꽃들이 바닥에 바싹 붙어 모여 피면서 융단처럼 초원을 덮고 있었다. 꽃과 초지가 만드는 평원 사이에 난 좁을 길을 걸었다. 곳곳에 웅덩이가 생겨 하늘을 비추고 있었고 그 너머로 낮은 언덕과 침엽수림이 이어졌다. 언덕 위에 올라서 옐로우스톤의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평원을 한참 내려다봤다. 숲 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더듬으며 걷다가 숲 속에 숨어있는 깨끗한 호수를 훔쳐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 호수 이름이 클리어레이크였다.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러다 캐넌 빌리지를 볼 수 없을 듯 발길을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캐넌 빌리지 사우스림을 뛰다시피 걸었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물이 엄청난 중량으로 밀려 내려오다 바위를 만나 굽이치고 하얀 포말을 만들어냈다. 물은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밀려 내려갔다. 그러다 낮은 곳으로 가라앉은 곳을 만나 폭포로 쏟아져 내렸다. 짙은 녹색의 물은 폭포에 이르러 하얀색으로 변한다. 폭포를 지난 물은 다시 숲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계곡 밑으로 흘러 내려간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높은 전망대에서 물이 닿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평원 속으로 도도히 달려가는 물줄기의 장엄한 행진을 감탄하며 비켜 보았다. 전설 속 기마부대의 행진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심정이랄까.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들소와 엘크 같은 야생동물을 자주 본다. 엘크 무리가 도로 주변에서는 풀을 뜯고 있으면 차량들이 멈추고 지켜본다. 들소 무리가 도로에 올라오면 차에 내려 그 진귀한 모습을 보려고 인파가 몰린다. 곰이 출몰하기도 한다. 숲 속 깊은 곳에 숨은 곰들을 보기 위해 일부 여행객들은 망원경을 들고 다닌다. 고배율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맨들은 곰이 자주 출몰하는 곳마다 진을 치고 곰의 출현을 기다린다. 옐로우스톤에는 1년에 꼭 한 번씩 곰에게 사람이 다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공원 곳곳에는 곰 조심 경고문이 붙어 있다. 

옐로우스톤은 경기도 면적과 비슷하다. 신은 설산 침엽수림 초지 야생화 호수 연못 간헐천 계곡 폭포 같은 자연의 요소를 재료 삼아 지구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 결작 안에서 들소 늑대 코요테 엘크 같은 야생동물이 살아간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와이오밍 몬타나 아이다호 3개 주 접경지대에 걸쳐 있다. 아이다호 주 렉스버그에 숙소를 잡고 날마다 2시간가량 달려 몬타나 주 옐로우스톤 웨스트빌리지를 통해 공원에 출근했다. 웨스트빌리지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평원 내 작은 마을을 깨끗하게 정비한 곳 같다. 그곳에 내려 작은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라기보다는 레드아이라는 카페인 농축액을 한잔 마셨다. 동행 셋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참 취향이 다른 족속들이다.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행은 누구랑 하느냐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일행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된다. 동행 셋은 나와 참 다르다. 동행 셋은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처럼 좋은 곳에 묵으면서 좋은 음식 즐기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달리 나는 오두막이나 도미토리룸에서 자도 전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고 트레킹과 하이킹을 다니며 자연을 만끽하기를 좋아한다. 동행 셋은 도시를 좋아하고 나는 산과 호수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숙소 잡기도 쉽지 않고 여행 경로를 정하기도 어렵다. 다음에 옐로우스톤과 그랑티톤에 올 때는 오랜 친구나 사랑하는 이와 오고 싶다. 여행 취향이 비슷하거나 서로에 대해 깊이 알고 지내는 이와 오는 게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동행 셋은 시카고에서 미국 횡단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시카고 같은 도시에서 지내고 싶단다. 시카고부터 뉴욕까지는 혼자 여행한다. 나는 미국 횡단을 끝내고 싶다. 혼자서 나흘간 여행한다니 설렌다. 동행 셋의 갖가지 욕구와 관심을 다 맞추려고 급하게 달려오던 걸 멈출 수 있다. 혼자서 낯선 마을에 들러 커피 한잔하다 다시 출발할 수 있다. 가끔 낯선 고장의 바에 들러 위스키 한잔 마셔도 좋고. 미시간에 들러 친구 브라이언을 방문할 수도 있다. 동행 셋과 함께 방문해 폐를 끼치는 게 싫어 브라이언의 초대를 거절했는데. 이제는 가도 된다. 브라이언이 보고 싶다. 운전 시간만 무리가 없다면 브라이언을 만날 수 있을게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헤어진 지 3년 만에 만나는 친구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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