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그늘 밑 빈곤의 부유물

7월 마지막주 2박4일 홍콩 여행 단상

by 이철현

홍콩만큼 자본주의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곳도 없다. 부의 극단적 편중이 연출하는 기이한 모습이 일상으로 자리한 곳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소비 브랜드가 도심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도심 사이사이 자리한 마천루의 그늘에는 빈곤의 부유물이 떼를 지어 장관을 만들어낸다.


주말 홍콩 센트럴,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등 도심을 돌아다니다보면 고층 건물 그림자나 고가 밑에 20~30대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떼지어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홍콩 부유층이 고용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출신 가정부들이다. 주중에는 가정부로 일하고 주말에 쉬지만 소득 수준이 높지 않다보니 도심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카드 놀이하거나 수다를 떨면서 보낸다. 인원이 아주 많아 도심 곳곳에 40~50명씩 군집을 이루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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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몸 하나 누울만한 골방에서 지내며 홍콩 주민의 가사를 도맡는다. 그리 해서 번 돈을 고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 얼마 벌지 않은 돈을 가족에게 보내고 쓸돈은 없어 소호나 란카이퐁 같은 레스토랑, 카페테리아, 클럽 같은 곳은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니 도심의 그늘에 모여 같은 처지의 고향 사람과 지내는 것이다. 그들이 쳐다보는 사이로 배낭 멘 여행객이 지나고 한벌에 10만 홍콩달러(1450만원 가량)가 넘는 옷을 입은 홍콩 주민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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