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코펜하겐 크리스티아 여행기
코펜하겐 운하 남쪽 해안에 연한 크리스티아니아에 갔다. 마약에 중독된 히피 1천여명이 집단 거주하는 곳이다. 덴마크 육군이 1971년 군기지를 이전하자 히피들이 모여들며 집단 거주하면서 생긴 해방공간이다.
크리스티아하운 지구 내 구세주 교회에서 2~3분 걷자 오른 쪽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지저분하게 그린 벽화들 사이로 작은 문이 보였다. 문으로 들어가자 코펜하겐 시내와 지구 반대편만큼 떨어져 있을법한 이질적인 세상이 열렸다. 벽돌 건물마다 철굴 구조물이 지저분하게 달라 붙어 있고 갖다 버리지 못한 폐기물, 좋게 말하면 고색창연한 고물이 여기저기 나돌고 있다. 벽마다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벽화는 어김없이 있다.
크리스티아니아는 역설적인 면에서 바티칸만큼 독립적이고 이질적이다. 덴마크 당국은 코펜하겐 도심 한가운데 히피들의 해방공간을 허락한다. 어리둥절한 여행객을 아연실색하게 한 건 마약 판매상들이다. 히피들이 해시시나 대니시 파트 같은 마약을 버젓이 팔고 있다. 마약 판매대는 끝 없이 이어졌다. 지붕 사이를 줄로 잇고 줄마다 크리스티아니아 국기에 해당하는 빨간 바탕의 하얀 동그라미가 걸렸다. 어제 46년 생일을 맞아 밤 늦게까지 흥청망청 파티를 벌인 흔적이란다.
히피 2명이 해시시를 파는 좌판으로 다가갔다. 좌판에는 여러가지 마약이 널려 있었다. 향을 맡을 수 있게 말린 대마 잎이 투명 플라스틱에 담겨 있다. 해시시는 대마초를 농축한 마약으로 환각성이 강하다. 같은 대마초라도 첨가물에 따라 맛이 다른가 보다. 정확하게는 환각 강도나 지속 시간 등이 다른 거지만.
짙은색 진흙 모양의 해시시 덩어리를 벌여놓고 손님이 달라고 하면 칼로 떼어서 판다. 2가지를 가르키며 히피에게 물었다. “둘 사이 맛의 차이가 어떠냐?” 히피 왈 “피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마라. 이건 설명할 수 없다.” 에구 완전 무시당했다. 그렇다고 피울 수는 없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운하에 연한 숲속 나무 벤치마다 옹기종기 모여서 해시시를 피우는 히피들에게 다가갔다. 가장 마음씨 좋게 생긴 흑인에게 “어떠냐?”라고 묻자 히피는 웃으면서 “태워봐라”며 권했다. 정중히 거절했다.
배가 고파서 햄버거 집에 갔다. 크리스티아니아는 물가가 싸다. 코펜하겐에서 먹은 햄버거 중에서 가장 맛있었는데 값은 50크로네밖에 되지 않았다. 대략 8000원이다. 살인적인 덴마크 물가를 감안하면 엄청 싼거다. 크리스티아니아 필스너 맥주까지 곁들여 마셨다. 패티가 익는 동안 역시 히피인 집주인에게 물었다. “해시시 피워봤지? 어떤 기분이야?” 그 히피는 “잠시 우울해지다가 갑자기 뽕간 다음에 깨”라고 말했다. 대신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함께 마시라고 충고했다. 저혈당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단다.
제 정신인 이는 나밖에 없는 듯해 크리스티아니아 필스너 맥주 2병을 마셨다. 낡은 나무 의자들 옆에 앉아 나도 해시시에 취한 듯 코카콜라를 마시며 어울려보려 했다. 히피들은 지들끼리 떠드느라 내 존재 자체는 아예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지껄였다. 입에는 해시시 물고.
덴마크어를 한마디로 못하다보니 분위기만 느끼고 일어서야 했다. 크리스티아니아를 나와 코페하겐 운하를 따라 걸었다. 웜홀을 통과해 우리 은하계로 돌아온 듯하다. 발트해에서 흘러 들어온 바닷물은 깔리기 시작한 땅거미를 담아 짙어지고 그 위에 운하 옆에 자리한 건물들의 조명이 반짝여 흔들렸다.
숙소로 들어가기 싫어 블랙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왕립도서관에 왔다. 건물이 검은색 대리석이나 흑요석으로 지었는지 반들반들한 검은 벽과 유리가 운하 물을 반사하며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곳이다. 그 건물 뒤에는 수백년된 짙은 빨간색 벽돌 건물, 옛 왕립도서관이 유리 통로로 이어졌다. 현대식 건물은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었고 벽돌 건물에는 16세기 고색창연한 인테리어에 고서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북유럽 4개국 여행에서 내부시설을 본 건물 중 가장 아름다웠다. 이런 곳이 도서관이라니.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에 도서관이라니.
내일은 북유럽 여행 마지막날이다. 모레는 이스탄불 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이스탄불이 중간 기착지다. 잠시 머문 다음 드디어 한국으로 간다. 그립다. 낯익은 것들이.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 오는 선후배와 친구들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