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유학생과 함께 한 피요르 여행
노르웨이 송네 피요르드는 일정 내내 민주랑 함께 했다. 오슬로 발 뮈르달 행 열차 안에서 민주는 스마트폰 모바일 열차 좌석표를 보여주며 내 옆자리가 자기 자리인지를 물었다. 난 한국인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민주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6개월간 공부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고 다닌다. 이번엔 노르웨이였다. 우리는 피요르드 중간 기착지 플롬, 피요르드 페리, 베르겐까지 1박2일 내내 붙어다녔다. 물론 숙소는 달랐다. 글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돌아다녔다.
피요르드는 거대하고 깊었다. 빙하기 만년설의 무게로 형성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중력에 이끌려 밀려 나가면서 산과 평지를 깊이 파고 깎았다. 빙하가 지나간 자리에는 U자 모양의 거대한 땅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웅덩이마다 물이 차면서 산중 호수를 만들었다. 깎인 계곡 면에 초목이 자라면서 키 작은 교목이 절벽 면을 푸르게 덮었다. 딱딱한 암석으로 된 곳은 수목이 자라지 못해 빙하에 깎인 상처가 긁힌 모습 그대로 노출되었다. 산 정상마다 파인 웅덩이엔 만년설이 쌓여 하얗게 빛났다.
구름이 잔뜩 낀 탓에 산과 호수는 무채색을 덧칠한 초록, 연두, 노랑, 주황이 섞여 다소 무겁다는 느낌을 주었다. 가끔 구름 사이로 햇살이 핀 조명을 때리 듯 특정 지역에 내리면 그곳만 연두와 노랑 색으로 빛의 세례를 받아 화사해졌다. 태양의 신 발디르가 그곳만 축복해 햇살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마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천지 사위는 무거운 무채색으로 눌렸다. 호수는 하늘의 색을 더 깊게 흡수해 더 어두웠다. 석양이 지면서 하늘에 노을이 번졌다. 호수는 물비늘을 만들며 출렁였다.
너무 흐린 탓에 햇살에 환하게 빛나는 피요르드 계곡의 화사한 아름다움을 접하지 못했다. 산과 바다를 투명하게 반사해 하늘과 계곡으로 데칼코마니를 만드는 진경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피요르드는 아름다웠다. 플롬에서 접한 계곡과 호수에 정신을 빠진 채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민주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 눈으로 본 자연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민주도 이에 동의했다.
노르웨이 낭만파 화가 요한 크리스찬 달이 그린 그림이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을 다소 낭만스럽게 그렸다고 한다. 아니다. 과장은 없었다. 달은 노르웨이 자연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피요르드 주변 자연과 마을은 달이 그린 그림만큼 아름다웠다. 베르겐에 밤 늦게 도착해 부두앞 수산시장에서 해산물 스프와 연어를 먹고 각자 숙소로 들어가 잤다.
다음날 베르겐은 눈부신 햇살에 빛났다. 은 악세사리 가게 주인이 우리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운이 좋다. 이렇게 햇살이 좋은 날이 드물다.” 베르겐 시내를 동서남북으로 오가며 곳곳을 돌아다녔다. 특히 플뢰엔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베르겐 전경은 잊지못할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수평선에는 북해가 펼쳐졌고 섬마다 빨갛고 하얀 집들이 들어섰고 베르겐 항 앞 바다는 햇빛을 요란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한참 동안 서있었다. 민주는 영상 통화하며 가족에게 베르겐 전경을 보여주느라 여기저기 오르내렸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베르겐과 아쉽게 작별하고 공항으로 왔다. 북유럽 마지막 여행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간다. 오슬로로 돌아가는 민주와 서울서 만남을 기약하며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