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편의시설과 문화 공간 갖춘 친환경 공학기술의 결정체로 변신
호주 시드니 도심에서 남쪽으로 3.5km, 시드니국제공항에서 북동쪽으로 4km 떨어진 ‘그린 스퀘어(Green Square)’ 지역은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양털 말리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린 스퀘어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산업이 양털 세척이었다. 그래서 붙은 지명이 ‘건조 녹지(Drying Green)’이었다. 호주인들은 시드니 한복판에 있는 호수에서 갓 깎은 양털을 빨아 6200㎡ 면적의 그린 스퀘어에 널어 햇볕으로 말렸다. 덕분에 시드니는 150년동안 세계 양모 산업의 수도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호주인은 그린 스퀘어에서 양털을 깎고 세척해 저장했다가 바로 수출하거나 모직 제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했다.
이곳은 지금 환경 친화적인 미래 도시로 변신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는 그린 스퀘어를 주거·상업·문화 복합단지로 바꾸는 호주 최대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시드니 도심, 국제공항, 보타니 항구 사이에 자리한 그린 스퀘어 산업단지(278만㎡)에 온갖 첨단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지속가능한 도시의 전형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해당 프로젝트는 1995년 도시 설계안을 공모하면서 시작해 1998년 종합 개발 계획안을 만들었다. 사업과 문화의 거점 지역인 타운센터(14만 7천㎡)의 개발계획안은 2006년 4월 완성했다. 부지 조성 작업은 마쳤고 건축과 조경은 2022년초까지 끝낼 예정이다.
타운센터에 들어서는 생활 편의시설과 문화 공간은 친환경 공학기술의 결정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도심 곳곳에 자리한 도서관, 광장, 창작공간, 어린이집, 아쿠아리움 등 커뮤니티 시설들을 도보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게 도로망을 설계했다. 공원은 40개 이상이 들어선다. 또 계획안에 따라 잔디 축구장, 도서관, 공원, 실내외 수영장 등 온갖 편의시설이 순차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는 그린 스퀘어를 지속가능한 주거·상업·문화 공간으로 개발하기 위해 친환경 기술 5개를 적용했다고 자랑한다. 차량 운행을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도로망을 설계하는가 하면 빗물을 저장해 용수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갖춰 수자원 낭비를 줄였다. 공공건물마다 태양광 발전 설비를 갖추고 이를 지역 전력망으로 연결해 에너지 수요를 충당했다. 또 도서관, 아쿠아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 주요 시설들은 자연광 채광 등 에너지 효율을 높여 화석연료 의존도를 크게 줄였다.
① 자전거 천국 만드는 자전거 전용 도로망 “차 필요 없어요”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가 친환경 기술로 가장 먼저 내세우는 건 자전거 전용 도로이다. 센트럴, 대학들, 센테니얼 공원에서 출발해 15분 내로 도시 곳곳에 닿을 수 있게 자전거 전용도로 망을 만들어 도심 내 이동에 차량을 이용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차도 옆에 위태롭게 붙어있는 서울 자전거 도로와 달리 그린 스퀘어 자전거 전용도로는 인도를 사이에 두고 차도 반대편에 있거나 차도에 인접하더라도 보도블록 등 안전한 경계선을 세워 차도와 구분해 자전거 운전자를 보호한다.
그린 스퀘어는 자전거 운전자를 위한 온갖 편의 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시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열람하거나 음악실에서 악기를 빌릴 수 있다. 도서관 광장으로 가다가 잠시 미술관에 들러 전시물을 보기도 한다. 배 고프면 곳곳에 산재한 35개 넘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시드니 다른 지역과 비교해 차량 운행이 크게 줄었다. 그나마 운행하는 차량은 내연기관차는 갈수록 줄고 전기차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②매일 빗물 90만톤 용수로 활용… “가뭄이 뭐에요"
그린 스퀘어는 습지 지역이라 강수량이 풍부하다. 비가 많이 오는데 시내를 가로 질러 바다나 호수로 흘러간다. 이 점에 착안해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는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용수 시스템을 만들었다. 날마다 빗물 90만톤을 바다로 내보내는 대신 이를 한데 모아 재처리해서 변기 청소, 빨래, 정원 용수로 사용한다. 빗물을 재활용하다보니 도심 지역은 가뭄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 재처리한 빗물은 식수보다 킬로리터 당 10센트 싸다.
빗물은 지하 2km에 암반에 저장됐다가 끌어올려져 그린 인프라 센터(Green Infrastructure Center)에 흘러가고 이곳에서 미세막을 통과하면서 소금, 이물질, 박테리아 등 병원균이 제거된다. 재처리한 물은 매트론 루비 그랜트 공원 지하에 있는 탱크에 저장했다가 공중 화장실, 정원 아트리움 등 공공 건물로 보내진다. 도서관이나 창작 센터 내 화장실에 가면 변기에 연결된 보라색 파이프를 볼 수 있다. 바로 빗물을 재활용해 용수로 쓰는 수도관이다. 타운센터에 들어서는 건물마다 이런 보라색 파이프 등 빗물 용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③공공 건물 옥상은 태양광 패널 차지
그린 스퀘어는 소비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 재생에너지 전력망을 갖추고 있다. 특정 장소에서 태양광 패널로 자체 생산한 전력 이상을 사용하면 주변 다른 건물에서 남는 전력을 가져다 쓸 수 있다. 이로 인해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시설로 필요 전력을 자체 충당할 수 있다. 현재 공공 건물 35개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얼마전 개장한 구냐마 공원 아쿠아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태양광 발전으로 소비 전력을 충당하는 대표 사례다. 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는 다양한 크기의 실내외 수영장, 온수 치료 풀장 등 온갖 종류의 수중 스포츠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스케이트경기장, 바베큐 요리 시설, 다목적 경기장 등 야외공간도 갖추고 있다. 이 시설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광 패널로 생산한 전력으로 충당한다. 센터 내 자리한 카페는 커피 원두를 갈 때도 태양광 전기를 사용한다.
④도서관 복판에 자리한 햇빛 가득한 열린 지하 정원(sunken garden)
도서관과 부속 광장은 그린 스퀘어 한복판에 자리해 주민들이 만나고 배우고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이다. 전 세계 건축가 160명 이상이 공개 경쟁을 벌인 끝에 디자인을 선정했다. 자연과 조화를 각별히 신경 써 햇빛, 바람 등 자연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도서관과 부속 광장을 설계했다,
도서관 열람실을 땅을 파고 짓되 도서관 중심부는 지붕을 덮지 않아 햇빛과 신선한 공기가 풍부하게 들어오는 정원 아트리움으로 만들었다. 열람실이 지하에 있다보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대신 정원을 중심으로 원형의 통유리를 설치하고 정원을 보면서 책을 볼 수 있게 좌석을 배치했다. 그러다보니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부모는 정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책을 볼 수 있다.
도서관 광장 위로는 7층 유리타워가 솟아 있다. 이곳에는 커뮤니티실, 독서실, 음악실에 자리한다. 광장에 자리한 모바일 선라운지에서는 노트북을 충전하고 무선인터넷으로 전자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옆에는 긴 직사각형 모양의 대형 LED 패널이 세로로 세워져 있는데 기후 상태에 따라 색이 변하는 작품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낸다. 또 시민들은 밤에는 부속 광장에서 타워 표면에 투사되는 스포츠 경기나 영화를 볼 수 있다.
⑤알렉산드라 데폿 쓰레기 재활용도 환경 친화적으로 설계
알렉산드라 운하 옆에는 쓰레기 처리 시설이 있다. 도시 곳곳에서 분리 수거한 쓰레기들은 노란색 뚜껑의 쓰레기통에 담겨 이곳에 옮겨져 재활용되거나 재처리된다. 알렉산드라 쓰레기 처리 시설의 건설에는 그린 스퀘어 개발에 적용된 친환경 혁신 기술이 모두 담겼다. 우선 건물은 생태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 내부에 대형 빗물 탱크 6개를 설치해 쓰레기 처리에 필요한 용수를 빗물로 사용했다. 또 태양광 패널 1600개 이상을 설치해 에너지 소비를 자체적으로 조달했다. 대용량 테슬라 파워팩 배터리도 들였다. 기상 조건이 악화대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햇빛이 부족하더라도 평소 전력을 대형 배터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시설 운영에 필요한 전력을 얻을 수 있다. 전력망 운영업체 아우스그리드가 설치한 것으로 남는 전력은 다른 곳으로 보내진다.
호주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총 5억4천만달러를 투입한다. 그린 스퀘어 프로젝트가 당초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2030년까지 3만500 가구 총 6만1천명을 거주하고 일자리 2만1천개가 생긴다. 단지 거주 공간만 짓는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 생활·문화 공간,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파급 효과까지 고려한 종합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계획 단계부터 입주까지 프로젝트 총 소요 시간을 35년 이상 잡고 있다. 더디지만 꼼꼼하게 진행하겠다는 호주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호주 그린빌딩 협의회는 지난해 중순 그린 스퀘어에 그린스타(Green Star) 6개 등급을 부여했다. 그린스타는 주민 건강, 비용 절감, 지속가능한 건축 등 환경 친화적 건설 분야의 리더십을 평가해 지역사회에게 그린스타 1~6개를 부여하는 인증 시스템이다. 그린스타 6개는 최고 등급으로 세계 수준의 친환경 설계로 인정받는다. 그린 스퀘어는 친환경 디자인, 생활 편의성, 경제성 등 평가 항목마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