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꽃, 비에이 & 후라노

라벤더 꽃밭, 밀밭, 스토리 담은 나무... 사람 손에 꾸며진 자연의 미

by 이철현

7월 13일(목)


삿포로에서 JR 타고 북동쪽으로 2시 30분가량 지난 도착한 비에이와 후라노.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기대하는 곳이었다.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의 말 피에(아름다운 옥빛)를 한자어로 옮긴 것이 美英(비에이)다.


이 곳은 구릉지대다. 감자꽃, 밀, 보리, 라벤더 등 온갖 작물이 초록, 연노랑, 하양 등 갖가지 색채를 뽐내며 구릉 따라 낮게 펼쳐져 있다. 느닷없이 솟은 나무와 나무군이 밋밋할 수 있는 색채의 구릉에 변화를 주며 파란 하늘의 배경 삼아 서 있다.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은 나무마다 캔앤메리, 세븐스타, 가족 등 저마다 이름을 붙여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비에이가족나무.jpeg 아빠, 엄마, 가운데 자식까지 가족 나무. 이름 잘 붙였다.

인간이 신에게 당신 못지않게 자연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고 뽐내는 곳이 비에이 패치로드가 아닐까 싶다. 하늘에는 드문드문 떠 있는 구름이 형형색색 구릉과 만나는 곳에 나름의 사연을 가진 멋진 나무가 파수꾼처럼 감자밭과 메밀밭을 지키는가 하면 해발 2000미터 넘는 활화산이 연기를 내뿜는 산악을 배경으로 황금색 보리밭이 네모 반듯한 패치처럼 뻗어 자를 대고 선을 그은 것처럼 초록색 밭과 구별됐다.


전동 자전거 타고 2시간가량 돌자 가이드북이 들려야 한다고 권유한 곳은 다 봤다. 이어 비에이역 남쪽 파노라마 로드로 자전거를 돌렸다. 아뿔싸! 이게 실수였다. 파노라마 로드에 자리한 아름다운 꽃밭 사계 채언 덕, 팜토미타, 라벤다로드를 보기 위해 구글맵에 의존해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에구. 패치워크 로드에서 사계 채언 덕까지 산 넘고 물 건너 2시가량 걸렸다. 작렬하는 태양 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날아오는 벌레를 씹으며 먼지투성이가 되어 라벤더, 금어화 등 형형색색 꽃이 끝도 없이 피어있는 사계채언덕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엔 꽃보다 중국인이 더 많았다. 번잡함을 피해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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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담배 마일드세븐 표지에 오른 나무군(왼쪽 사진). 라벤더 등 온갖 꽃이 줄지어 피었다.

다시 라벤더 꽃이 우거진 팜토미타를 향해 떠났다. 이게 결정적 실수였다. 사계채언덕에서 팜토미타까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트럭, 버스, 자가용이 쏜살같이 달리는 고속국도 갓길을 2시간가량 달려 도착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팜토미타는 사계채언덕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훨씬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라벤더, 페퍼민트, 도라지꽃, 양귀비꽃 등 형형색색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었다.


서둘러 떠나야 했다. 자전거를 반납해야 할 곳은 비에이역. 자전거 빌려주는 곳은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정각. 2시간 이내에 24km를 주파해야 했다. 라벤더 밭의 아름다움을 눈과 마음에 듬뿍 담고 자전거에 올랐다.


전동 자전거는 언덕을 오를 때 제 성능을 발휘했다. 산악자전거 타고 고개를 넘는 이를 추월할 정도였다. 사투 끝에 마감 15분을 남기고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었다. 휴가를 온 건지 극기훈련을 온 건지. 이제부터 가이드 있는 관광버스 아니면 아무것도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늦은 탓에 옥빛으로 빛나는 아오이 이케(푸른 연못)과 시게히로노타키(흰 수염 폭포)에는 가지 못했다. 아쉬웠다. 활화산 토카치타케에서 내린 물이 광물 성분과 섞여 신비로운 옥빛으로 물드는 곳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아이폰 배경색으로 삼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다음을 기약하며 삿포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도야, 무로란, 시코츠 호수에 간다. 이번엔 한국인 가이드가 탑승한 관광버스를 예약했다. 비에이와 후라노 사이 파노라마 로드에서 겪은 생고생 탓에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다. 내일은 칼데라호를 구경하고 온천하면서 다니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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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이에서는 인간이 작정하고 꾸민 인공적 자연미의 극치를 볼 수 있다. 면 자연을 가꾸면 얼마나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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