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한의 순례길, 오타루

운하 지나 사카이마치 도리 끝 키타이치 글라스 3호관과 오르골 본당까지

by 이철현

7월 12일(수)


지도상 좌표와 달리 길은 압축적으로 다가왔다. 아침 9시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 10시 숙소로 돌아오기까지 3만 보를 걸었다. 딛는 걸음마다 길은 열렸으나 회한은 깊어졌다. 여행은 자기 안으로 깊이 천착하는 길인 듯하다. 자기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저질러진 실수나 오류 탓에 수치심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삿포로에서 JR 고속열차를 타고 35분가량 달리자 이와이 순지 감독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 오타루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이른 곳은 오타루 운하. 오타루는 항구도시다. 100년 전 화물을 실은 선박들이 오가는 물길을 열기 위해 운하를 팠다. 지금은 물류라는 본래 기능을 잃고 한국과 중국 커플이 낭만을 찾기 위해 운집하는 관광지로 전락했다.


오타루 운하를 따라 걷다 고개를 담장 위로 내밀어 물길을 보자 내 실루엣이 비쳤다. 강에 이르러 오만, 방탕, 유혹에 삶을 낭비한 자신을 탓하는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싯다르타는 강에 이르러 강이 건네는 소리를 듣고 진리를 깨달았다. 하나 나는 여전히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타루 운하를 흐르는 강은 중생 주제인 내게 아무 소리도 건네지 않았다. 중국인들만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번잡함을 피해 서둘러 사카이마치 도리로 향했다.

오타루운하옆.jpeg 오타루운하 옆 둑방길 따라 한컷

번화가답게 사카이마치 도리는 관광객과 원주민이 섞여 활력에 넘쳤다. 사카이마치 도로가 끝나는 곳에 기타이치 글라스 3호관과 오르골당 본당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키타이치 글라스 3호관에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아 키타이치홀에 들어갔다. 167개 램프가 만들어내는 오렌지 빛 조명에 등유가 타면서 내는 냄새가 섞였다. 피아노 연주가 곁들여지면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오타루 생맥주 한잔 하며 피아노 연주 2곡을 들었다.


유리공예품이 진열된 건너편 매장으로 들어갔다. 잔이며 그릇을 지나치다 유리로 만든 푸들 2마리에 마음을 뺏겼다. 2마리를 일단 샀다. 그러자 옆에 있는 검은 강아지가 나를 보았다. 그 녀석도 입양했다. 이 탓에 2400엔을 써야 했다.


일본 최대 오르골 전문점에 들어섰다. 이 석조 건물은 1912년에 지어졌다. 겉은 벽돌이나 안은 목조로 지어졌다. 진열대 위에 엄청난 숫자의 오르골이 소리를 냈다. 소리, 아니 음악에 취했다. 아까 마신 오타루 생맥주에 취했나. 암튼 환상의 음악 소리에 취해 오르골 사이를 떠돌았다. 손 들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고양이 오르골을 거금 2500엔을 들여 샀다.

오타루오르골공장앞.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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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명물 오르골 본당(왼쪽 사진) 안에는 오르골이 1~2층에 걸쳐 가득했다.

버스를 타고 텐구산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랐다. 홋카이도 3대 절경이라는 일컫는 오타루 전경을 내려다보고 싶었다. 구름이 가려 홋카이도 절경은 포기해야 했다. 대신 구름은 운하를 이루며 나를 선계로 이끌었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35분가량을 걸어 내려왔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향토요리 오오토미에 들러 오오토미 스시 12품 등 제철 해산물을 먹었다. 삿포로 맥주 3잔도 곁들였다. 잔뜩 취해 오타루 운하로 돌아왔다. 가로등이 오렌지 빛을 발했고 오타루 운하를 그 빛을 산란했다. 안개까지 슬며시 끼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오타루 스시집.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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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루 명물이라는 스시집. 골목 깊숙이 숨어있어 찾느라 힘들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온 엄마와 딸이 스시를 맛보고 있었다.

내일은 새벽부터 일어나 비에이와 후라노에 간다. 서둘러 숙소로 복귀하다가 페친이 권유를 받아들여 삿포로 야경을 보러 갔다. JR 삿포로역에 연한 JR타워 T38이라는 전망대에 올랐다. 도시 전체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였다. 스스키노 등 번화가가 밀집한 남쪽보다 주택들이 운집한 북쪽이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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