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츠 & 도야 호수, 무미건조한 패키지여행

다시 가지 않으리라 다짐한 패키지여행의 무료함과 타분함

by 이철현

7월 14일(금)


JR 삿포로역에서 정기관광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30분가량 달리자 시코츠·도야 호수에 도착했다. 둘레가 40km가 넘는 칼데라호들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차려진 밥을 먹는 기분인 듯해 그런가. 버스 타고 졸다가 내리라 하면 내려 1시간가량 둘러보다가 타라고 하면 다시 졸다가 내려 사진 찍는 식이었다. 지금까지 여행은 혼자 알아보고 늦을까 봐 기차역에 서둘러 나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대중교통편을 알아보거나 자전거를 빌렸다. 구글맵을 켜고 걷거나 자전거를 내달리며 목적지에 이를 때는 갖가지 사연이 만들어졌다. 이에 오늘은 내내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덧없이 이동하는 게 익숙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차를 렌트하기 전에는 시코츠와 도야 호수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


관광버스 타고 다니는 여행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아무 감흥이 없다. 자다 깨서 옥수수 먹고 호수 보고 졸다 깨다 감자 먹고. 이게 다였다. 이에 오늘은 별로 쓸 말도 없다. 아쉽다. 가이드는 일본어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거라곤 몇 시까지 버스로 돌아오라는 정도니. 에구. 중국, 대만, 싱가포르 관광객도 왔으나 졸다 사진 찍다 먹다 버스 타는 게 전부였으니 대화가 없었다.

시츠코가는길.jpeg 패키지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함께 한 도야 & 시츠코 호수 여행길

그러다 보니 오늘 여행의 파트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노인과 바다였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보는 책이다. 혹시나 해서 인천공항에서 샀는데 무료한 여행의 동반자가 됐다. 30년. 소년 마놀린이 노인 산티아고가 될 세월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수완, 아집, 의지 등에 의지해 2m 넘는 청새치를 이틀간 사투 끝에 끌어올리는 산티아고에 어느새 감정 이입했다. 지천명을 눈앞에 둔 내가 지난 2년간 사투 끝에 끌어올리려는 청새치는 무얼까. 에구 모르겠다. 산티아고만큼 치열하지만 난 내가 끌어올리려고 사투를 벌이는 청새치의 정체를 모른다. 찾아야겠지. 아니면 우리 후배들이 찾겠지. 난 그저 조류에 따라 흐르다 보면 지쳐 수면으로 올라오는 내 청새치 심장에 작살을 꽂아야겠지. 그 순간을 기다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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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츠코인지 도야인지 암튼 자다 깨서 본 호수

내일은 다시 고난의 행군이다. 일본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하코다테로 간다. 왕복 7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 가이드는 1박 2일을 권한다. 하나 내 숙소는 삿포로에 있다. 아침 6시 열차로 갔다 자정 전에 도착하는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어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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