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도 생태계의 일부분
“ㅇㅇ씨, 혹시 밭에 지렁이 있어요?”
은경언니가 전화로 대뜸 밭에 지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왜요?”
“나 지렁이 무서워하거든. 지렁이 있으면 밭에 못 들어가요.”
“……”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순간 망설여졌다.
조금 있으면 고구마를 수확한다. 은경언니에게도 밭으로 고구마를 수확하러 오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다. 막상 수확철이 다가오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밭인데 당연히 지렁이가 있겠지요. 지렁이 있는 땅은 좋은 땅이구요. 우리 밭은 작년까지 농약을 쳤던 땅이라 아직까지 지렁이는 별로 못 봤어요. 올해 무농약으로 농사지으니 내년쯤에야 지렁이가 돌아올려나……”
“아, 그럼, 다행이다.”
언니가 안심하는 모습이 전화기를 타고 전해왔다. 연이어 휴우, 하는 은경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할 말이 있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실은 우리 밭에서 지렁이는 내 눈으로 못 봤는데, 뱀은 봤어요.’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지렁이 있으면 밭에 못 들어간다는 사람에게 우리 밭에 뱀도 있어요, 라고 할 수가 없었다. 애벌레가 있으니, 애벌레를 잡아먹는 더 큰 곤충이 있고, 곤충을 잡아먹는 개구리가 있고, 개구리를 잡아먹는 들쥐가 있고, 들쥐를 잡아먹는 뱀이 있다.
지렁이는 밭 가장자리 둔덕에서 잡초를 제거하다 몇 마리 봤지만, 농작물 심은 밭에서는 여태 보지 못했다. 어렸을 때 비오는 날에 마당에 기어다니던 지렁이가 요새 흔하지 않게 된 것은 농약을 치는 농법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때는 등산화를 신고 일했다. 여름이 다가오자, 체리 할아버지가 밭에 들어갈 때는 꼭 장화를 신고 들어가라고 조언했다. 밭에 독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설마 독사가 아무 데나 있나요?”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그랬더니 체리 할아버지가 자기를 보라면서 장화 신은 발을 가리켰다. 밭에 들어갈 때면 항상 장화를 신고 들어간다고 했다. “물린 다음에는 늦어. 독사 우습게 보지마. 물리면 끝이야.”
나는 길옆 밭이라 독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밭은 길옆인데, 설마 독사가 있을까요?”
“그럼, 설마가 사람 잡어. 독사가 움직이는 데 길 옆, 산 속 따지고 다니나 뭐. 지 내키는 데로 다니는 거지. 우리 밭에서도 여러 번 봤어.”
체리 할아버지 밭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는 말에 뜨끔했다. 체리 할아버지 밭도 길옆이다. 뭐든지 방비하는 게 좋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겨 얼른 장화를 샀다. 알고 보니 농사꾼의 필수물품 중의 하나가 장화였다.
장화를 사고 얼마 지나서였다. 고구마순이 무성해졌고, 각종 야채도 짙은 녹색을 자랑하며 밭은 그야말로 초록의 향연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진짜 뱀이 나타났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내가 먼저 뱀을 발견했다. 고구마순을 제치며 잡초를 뽑고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 뱀이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가다듬고 버벅거리며, 뱀, 뱀, 하고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이 선호미를 잡은 채 달려왔다.
“어디, 어디야?”
남편에게 뱀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나는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일이 있고 이주 후에 아욱 있는 곳에서 잡초를 뽑던 남편이 “어휴, 깜짝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냐니까, 뱀이 또 있다고 했다. 남편은 선호미를 들고 다시 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장갑을 끼고 일했으니 망정이지, 맨 손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우리가 발견한 게 독사인지, 물뱀인지, 구렁이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뱀을 보고 자동반사로 놀라 비명을 지르고, 혹시 독사일까봐 처리했다.
뱀이 우리에게 직접 피해를 준 것은 없다. 어쩌면 들쥐를 잡아먹어 고구마를 갉아 먹는 것을 막았을 수도 있다. 들고양이는 불쌍해 먹이를 챙겨주면서도 뱀은 독사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목숨을 앗았다.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일이었지만 내내 찜찜하고, 언젠가 읽었던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의 한문수필 ‘슬견설’이 생각났다. 이와 개의 죽음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명의 평등에 관한 것이다.
은경언니에게는 끝끝내 우리 밭에 뱀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밭도 생태계의 일부분이라 엄청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