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농부 분투기 12화

고구마를 캐다

by 예담

호미로 땅을 파면서 손을 넣어 봤더니 단단한 게 잡혔다. 고구마다. 의외로 크다. 고구마순을 걷어내고 호미로 조심스레 파니 고구마들이 보였다. 상처 나지 않도록, 목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기 다루듯 살살 파내었다. 야호, 생각보다 크게 달렸다. 이 정도면 성공이다. 쾌재를 부르고 여기저기, 그야말로 동네방네 알렸다. 직접 와서 캐면 10kg에 만 원씩 주겠다고 소문을 내었다. 작업할 날짜를 올리고 지원자를 받았다. 한꺼번에 몰리지 않도록 날짜 예약을 받았다. 금세 예약이 다 끝났다. 4일 정도 캐면 될 것 같았다.

농자재 판매소에 가서 낫 두 개와 호미 열여덟 개와 반코팅된 목장갑 다섯 묶음을 샀다. 담아서 가져갈 상자들도 모았다. 저울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나름 준비해 놓고 손님들 올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고구마 캐는 날이 왔다. 부부끼리도 왔고, 친구들하고 온 지인도 있었고, 시어머니에 시누이까지 대가족이 온 팀도 있었다.

고구마 캐는 지인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율리아 부부는 밭일하기에는 너무 고운 옷을 입고 와서 옷을 버릴까 걱정되었다. 율리아는 도착 전에 밭에 몇 명이 있느냐고 휴대전화로 묻더니, 사람 수 만큼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들고 왔다. 요셉피나는 나눠 먹을 요량으로 여러 종류의 과일을 예쁘게 깎아서 담고 왔다. 명희언니는 빵을 많이 만들고 가져왔다.

둘이 일하던 밭이 모처럼 시끌벅적 왁자지껄했다.

“허허, 도망가지 않고 결국 캐네, 캐.”

여러 사람들이 와서 고구마 캐는 것을 보고, 체리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흙살이 참 고운 땅인데, 움켜잡아 안 내놓으려는 것처럼 흙이 너무 단단해져 있었다. 캐내는데 다들 애를 먹었다. 마치 고대유물을 파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도 했다. 고구마가 빠져나간 자리는 잇몸에서 이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고구마는 대체로 큰 게 많았다. 어떤 것들은 어린애 머리통만큼이나 컸다. 전이나 맛탕을 해먹으면 좋을 듯했다. 요즘은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는 것을 선호해 너무 큰 고구마는 하품이라고 했다. 너무 간격을 두고 심어서 그렇다고들 했다. 여러 사람이 모이니,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참고해야 할 것도 있었지만 그냥 듣고 흘릴 말들도 있었다.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캐러 오면 10kg에 만 원이라고 한 것은, 크기에 상관없이, 캐다가 부러지거나 상처 낸 것까지 포함해서 다 가져가기를 바라며 매긴 가격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건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상처 낸 것이나 너무 크거나 작은 것은 두고 골라서 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준비해 두었거나 캐러 오는 사람들이 가지고 온 상자들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무게를 달았을 때 13kg 넘게 나가는 것들도 많았다. 돈이 들더라도 일괄적으로 10kg들이 상자를 사놓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울을 사는 값이면 상자를 사고도 남았을 거였다. 상자에 담은 것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다는 게 힘들고 귀찮았다. 그리고 무게가 부족한 것은 기꺼이 채워주었지만, 무게가 넘는 것은 혹시나 서운할까봐 덜어내지도 못했다. 살면서 물건을 팔아본 적이 없으니 농사짓는 일 못지않게 농산물 파는 행동도 어설펐다. 그래서 그랬는지 첫 고구마 농사치고는 엄청나게 수확한 것 같은데 수입은 별로였다. 게다가 머리통이 너무 크거나, 작은 거, 상처나거나, 부러진 것들만 우리에게 남아, 농사짓는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요셉피나와 율리아는 60kg 정도씩 가져갔는데, 약속이나 한 듯 10만 원씩 주고 갔다. 고구마를 더 가져가라고 했더니, 나머지는 고생한 값이란다. 가지고 가는 고구마도 선물로 드릴 거라고 했다. 고구마가 필요해서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가슴이 찡했다. 같은 동네에 살지 않아서 넘쳐나는 야채도 한 번 나눠주지 않았는데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멀리까지 시간내어 와 준 것이다. 어찌 고마운 사람이 둘 뿐이랴.


육촌 명희언니와 승규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와서 온종일 고구마를 캐고 뒷정리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늦게 갔다. 승규는 오랫동안 입원했다 퇴원한 지 얼마 안 돼 힘든 일을 하면 안 되는데도 친누나인 명희언니와 함께 와주었다. 두 사람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밭에 온 지인들에게 소개할 때 사촌이라고 했다. 평상시에도 나는 사촌이라고 한다. 육촌이라 하면 먼 친척 같아 왠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촌수로는 육촌이지만 육촌이라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의지할 사람 한 명 없는 서울살이 초창기에 명희언니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해파리냉채를 해준 사람도 명희언니였고, 딸이 태어날 때 남편보다 먼저 병원에 달려온 사람도 명희언니였다. 첫 김장을 같이 해주며 김장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도 명희언니다. 남편이 잡채를 좋아하는데, 잡채만드는 법도 명희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고구마 밭에 잡초를 뽑다 알게 된 냉난방 설비하는 부부는 이틀이나 출근하듯이 와서 캐는 게 서툰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니냐며, 수시로 걱정하는 말을 했다. “아고, 사모님, 이렇게 힘들게 농사지어서 만 원이 웬말이에요. 한 가마니 가져가도 겨우 몇만 원이겠어요. 아고, 아까워 죽겠네요. 내년엘랑 제발 제값 받아요.”

고구마가 빠져나간 밭은 휑했다. 뿌듯한 것 같기도 하고,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뒤숭생숭 시원섭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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