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까, 그늘막과 곡식키를 가져간 이는
“어, 이게 왜 나와 있지?”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평상 위에 가위가 나와 있었다. 평상시에 서랍 안에 두고 다니는 가위다. 서랍 안이 답답하다고 스스로 나왔을 리는 없고, 누군가 꺼냈다는 말인데…….
우리 비닐하우스는 잠금장치가 없다. 비닐하우스를 지어달라고 맡겼더니, 잠금장치를 달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니, 잠금장치 달기 불편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잠금장치가 필요했다면 잠금장치를 달 수 있게 만들어 주었겠지, 여기에서는 그런 장치를 안 해도 될 만큼 안전한가 보다, 하고 잠금장치 없이 지냈다. 중고 냉장고도 하나 얻어다 비닐하우스 안에 놓았다. 거기에다 물을 넣었다가 시원하게 마시기도 하고, 음식 재료나 김치나 쌈장, 고추장 같은 것들도 넣어 두고 먹었다.
물을 꺼내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거로 보였다. 먹다 남기고 간 반찬통들도 그대로고, 음료수며 생수병들도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생수병을 들었다가 그대로 놓았다.
“여보, 당신 혹시 가위 꺼내놓고 갔어요?”
“아니, 나는 그때그때 쓰고 제자리에 놓잖아. 그리고 요즘은 가위 쓸 일도 없었고.”
“근데, 가위가 나와 있어요.”
“가위가?”
“네, 물을 마셔도 될지 모르겠어요.”
“왜?”
“가위가 나와 있어서.”
“가위하고 물하고 뭔 상관인데?”
“왠지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잠시 후 비닐하우스 뒤쪽 문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여보, 그늘막이 없어졌어요!”
“뭐라고?”
남편도 놀라서 달려왔다.
케이블타이로 단단히 묶여있던 부분을 보니 자른 흔적이 있었다. 남편은 노발대발하며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다른 것도 없어졌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자잘한 것들은 모르겠고, 곡식키가 안 보였다. 그늘막은 6만 원, 곡식키는 3만 원 주고 산 것이었다. 9만 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다. 그러나 돈을 떠나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이런 황당한 일이, 누가, 대체, 왜, 이러다가, 어쩌면 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느 날 비닐하우스 문을 열고 갔더니, 누군가 머물다 간 흔적이 있었다. 테이블 옆에 컵라면 용기와 빵 봉지, 음료수 깡통 등이 담긴 비닐봉지가 있었고, 테이블 위에도 라면 국물 같은 자국이 있었다. 노숙자일까? 아니면 동네 사람일까? 모르는 누군가의 손을 탔다고 생각하니 찝찝했다. 그다음 주에 가면서 잠금장치를 사고 갔다. 그런데 잠금쇠 아대를 박을 데가 마땅하지 않아 사놓고 포기했다. 다행히 누군가 왔다 간 흔적이 없어, 일회성일지도 모르니 일단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났나. 밭에 갔더니, 아직 매매되지 않은 밭에서 여러 사람이 작업하고 있었다. 매매되지 않은 일부 필지는 공짜로 빌려주었다고 들었는데, 거기에다 무언가를 심는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가 일하고 있으니, 어떤 여자가 다가왔다. 조금 있으니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도 왔다. 그들은 팥을 뿌리러 왔다고 했다. 남자는 점잖은 편이었는데, 여자는 엄청 수다스러웠다. 우리 부부를 처음 보는 데도 반가운 이웃 만난 듯 허물없이 굴었다. 콩을 뿌렸는데, 올라온 게 너무 적어 다시 팥을 뿌리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번에 콩 뿌리러 왔을 때 우리 비닐하우스에서 잠시 쉬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누가 우리 비닐하우스를 사용했는지 알게 되어서, 불쾌하기보다는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여자는 내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하면서. 그렇게 나오니 안 알려주기도 뭐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지만, 전화 받을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여자는 세 번 전화를 걸어왔다. 한 번은 마른 고추나 고춧가루를 살 사람 소개해 달라는 전화. 두 번째는 들깨 살 사람 소개해 달라는 전화. 세 번째는 팥을 탈곡하는데 우리 전기를 좀 써도 되느냐는 전화. 나는 그 세 번의 전화에 다 응해주었다. 고춧가루 살 사람을 한 명 소개해 주었고, 들깨도 홍보해주었지만 내 주변에는 들깨를 사서 먹는 사람이 없어 판매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기도 흔쾌히 쓰라고 했다.
늦가을 어느 날 밭에 갔더니 지난주까지 서 있던 팥대가 얌전히 베여져 누워있었다. 그리고 우리 비닐하우스에는 또다시 누군가 사용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좀 치우고 가지.”
남편이 한마디 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나도 한마디 보탰다.
처음에는 그렇다 쳐도 두 번이나 그러니, ‘그럴 수 있지’가 아니라, ‘그러면 안 되는데’가 되었다.
오늘 오면서 보니, 팥 탈곡까지 끝낸 게 보였다. 탈곡하고 남은 팥대들을 태웠던 자리가 검었다. 그리고 우리 비닐하우스 안에도 그들이 왔다 간 흔적이 있었다. 바로 빵 봉지며 음료수 깡통들이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이런 경험을 하니 기분은 여섯 배 정도 더 나빴다.
“또 그랬어. 또.”
전기까지 그냥 쓰라고 했는데,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가다니, 나는 불쾌한 마음을 누르며 쓰레기들을 치웠다. 그러다 평상 위에 나와 있는 가위를 보게 된 것이다. 그 가위는 만능가위처럼 뭐든지 잘 자를 수 있는 가위였다. 짐작건대 우리 가위를 가지고 우리 그늘막을 잘라 간 것이다. 거참, 기분 더럽다.
“팥 농사 지은 여자 전화번호 알지?”
내가 그들을 의심한 것처럼 남편 역시도 그들이 의심스러운 모양이다.
“전화 걸어봐.”
팥 탈곡하러 왔을 때 밑에 까는 비닐천막 같은 거를 안 가지고 와서 임시로 사용하려고 잘랐다가 그냥 가져갔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돌려줄 거라면서, 전화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물어보라고 했다. 그럼 곡식키는 왜 가져갔단 말인가. 그 부부가 임시로 사용하고 두고 가는 것을 깜빡하고 가져갔다면, 먼저 전화를 걸어서 이만저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을 거였다. 무심결에 딸려갈 정도로 부피가 적은 것들도 아니고, 여태 전화가 없다는 것은 설령 가져갔대도 돌려줄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 부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가져간 거라면, 그늘막이나 곡식키에서 만족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해꼬지를 한다면, 상상에 상상이 자꾸 더해졌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의심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의심하는 마음을 끊어내지 못하니 더욱 괴롭다. 누굴까? 그늘막과 곡식키를 들고 간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