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그 무성한 생명력
비닐로 멀칭을 하지 않고 고구마순을 심었더니, 고구마순이 안착하기도 전에 잡초들이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애초에 계획은 두 번 정도 잡초를 뽑는 것이었다. 두 번 정도 잡초를 뽑아내는 동안 고구마순도 열심히 자라 이랑은 물론 고랑까지 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초등학교 동창에게 고구마 농사를 지을 거라고 했을 때, 농번기 때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아서 농사 힘든 줄 모르고 덤비는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 농사지을 거면 반드시 멀칭하고 지으라고 조언했다. 나는 검은 멀칭으로 뒤덮여 있는 게 너무 보기 안 좋고, 땅도 숨을 쉬어야 할 것 같아 멀칭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동창이 “그래, 해봐야 힘든 줄 알지? 고구마 밭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 뽑아 봐야 힘든 줄 알고 그만두지.” 하면서 웃었다. 물론 악의가 없는 웃음이었다.
남편이 잡초 때문에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온다면서 나를 깨웠다.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었다. 서둘러 밭으로 가자고 했다. 아니, 이 남자가 미쳤나. 새벽 3시 30분에 곤히 자는 마누라를 깨워 밭으로 가자니, 어이가 없었다. 싫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 혼자 가겠다며 부산스레 움직였다.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며 마지못해 일어나 준비했다.
밭에 도착하니 다섯 시였다. 여름이라 해도 아직은 날이 채 밝지 않아 희끄무레했다. 비닐 하우스는 지었지만 아직 전기가 개설되지 않은 상태였다. 남편은 비닐하우스 안을 향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비추었다. 자동차 불빛을 의지해 휴대용 버너 위에다 주전자를 올리고 물을 끓였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누가 보면 일을 못해 환장한 부부 같았다.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아직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이라 주말이 아니면 농사일을 할 수가 없기에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이다. 못 말리는 부지런함이 남편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주말 이틀 동안 12시간씩 고구마 밭 잡초 제거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도 우리가 잡초를 제거하는 속도보다 잡초가 늘 먼저 앞질러 갔다. 지구를 흔히 초록별이라고 하는데, 잡초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귀농한 지 5년이 되었다는 마을 어르신이 걱정을 했다.
“잡초랑 싸울 생각 말어! 그러다 자네들 먼저 죽어!”
지금이라도 비닐 멀칭을 하라고 했다. 고구마 순 상할까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고구마 순은 생각보다 강해서 문제가 아니고, 우리 부부가 문제라고 했다. 한낮에는 좀 쉬면서 일해야지, 그러다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는다고 했다.
어르신이 걱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잡초 뽑는 일을 계속 하자, “잡초만 뽑다 가을에 수확도 못하고 도망가겠군.” 했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두통이 심해 약을 먹은 적은 있었다. 나는 천으로 된 차양이 넓은 모자 위에다 밀짚모자를 겹쳐 쓰고 일했다. 한낮에도 쉴 수가 없이 일해야 했는데, 등이 따가운 것은 견딜 수 있었지만, 머리가 뜨거운 것은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씩 잡초와 사투를 벌이며 많이 울었다. 노동이 힘들었다기보다 부모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경운기도 없어 쟁기로 밭을 갈면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힘든 노동을 하면서 일곱 자식을 키웠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저절로 났다. 내가 하는 노동은 그분들의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업도 아니고, 막말로 하기 싫으면 안 해도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일곱 자식을 거느린 부모에게 농사란 목숨줄이었다. 놓아서는 안 되는 그 목숨줄을 붙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고생하셨다고, 너무나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 말을 들어줄 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신 게 너무 원통해서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