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주는 기쁨과 마음고생
잡초가 맹위를 떨치는 것과 별개로 수확의 기쁨도 뒤따랐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나서면서, 수확하는 농산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남편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부부의 결론은 감자, 옥수수, 고구마는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그 외 상추, 깻잎, 호박, 가지, 수박, 참외, 토마토 등은 무료로 나눠주는 것으로 정했다.
그런데 나눠주는 게 단순하지 않고 어려웠다.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가지를 10개 땄다. 하나씩 나눠 주는 게 손이 부끄러울 것 같아, 두세 개씩은 주어야 하는데 누구에게 줄 것인가, 그리고 어떤 것을 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겼다. 어떤 농산물도 똑같은 게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 칠남매를 키우면서 ‘아롱이 다롱이’ 다 다르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농산물도 마찬가지였다. 10개의 가지가 크기나 모양이 다 제각각이다. 늘씬하게 쭉 뻗은 게 있는가 하면 통통하면서 오그라든 것도 있고, 병충해를 입어 얽은 부분이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숙제도 보통 큰 숙제가 아니었다. 어느 날 스스로 점검해 보고 깜짝 놀랐다. 오, 맙소사! 예민하거나 까탈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늘씬하게 쭉 뻗은 것만, 무던한 성격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통통하거나 오그라든 것을 주고 있었다. 가지만이 아니라, 수박도 참외도 오이도 그렇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왔던 것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해야 하나, 까탈스러운 손님이 더 많은 서비스를 받는 거라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예민하고 무던한 성격이라는 기준도 특별한 것이 없고, 어찌 보면 지극히 추상적이고 나의 선입견인데 말이다. 음식점에서 같이 밥을 먹다 보면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이 나올 때가 가끔 있다. 누구는 종업원을 큰 소리로 불러 그것을 알린다. 누구는 조금만 소리로 종업원을 불러 살짝 말한다. 누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머리카락을 냅킨에다 슬쩍 건져놓고 그냥 먹는다. 그런 경험이 그 사람의 예민함과 무던함을 가르는 기준이 된 것도 있었다.
정 나누어 줄 수 없는 것들은 우리 차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신없을 정도로 가지가 열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작고 볼품없고 병충해로 심하게 얽은 것만 돌아왔다. 수박이나 참외, 토마토도 살이 터진 것이 우리 것이 되었다. ‘우리가 농사를 왜 지으려고 했지?’ 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이르렀다.
아무도 내게 농사지은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더더구나 좋은 것만 달라고 한 사람은 기필코 한 사람도 없었다. 이래서 텃밭이 5평이 넘으면 분심이 든다고 했구나 싶었다. 상추든 뭐든 나눠 먹을 것이 생긴다. 나눠주려고 했을 때 그것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유독 걱정을 많이 하는 지인이 한 명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삼백 평 정도 농사를 3년 정도 지었다가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농사지은 사람은 뭐든지 아까워 밭에서 썩는 꼴을 못 본다. 직장 다니면서 주말을 이용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주말마다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수확한 것을 싣고 집으로 가지고 와서 다듬느라고 주말마다 12시를 넘기고 잤다. 월요일 아침 차에 싣고 직장에 가지고 갔다. 자기 손으로 나눠주는 것보다, 알아서 가져가라고 공개된 장소에 두었다. 늘 동작 빠른 사람이 좋은 것을 먼저 골라 갔다. 나중에 고르는 사람을 생각해 좋은 거, 덜 좋은 거, 안 좋은 거 골고루 가져가면 좋으련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고 했다. 나중에 고르려고 했을 때 마음에 안 들면 뭐 이런 것을 가지고 왔느냐고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다 가져가면 괜찮은데, 나중에 안 가져간 것들은 다시 주섬주섬 거둬들이고 차에 싣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럴 때마다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어 마음이 심란했고, 그것이 누적되어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더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농사를 그만둔 대신 좋은 농산물을 사서 먹기로 했는데, 농사지을 때보다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나는 밭에서부터 상자나 비닐에 담고 와 나눠주었기 때문에 골라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었다. 다만, 마음에 안 들어 왜 이딴 것을 주느냐고, 속으로 궁시렁거렸을 수는 있다. 내 귀로 들은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사람 마음이 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큰 마음고생은 너무 늦은 시각에 나눠주는 것이었다.
여름에는 해가 길다. 여덟 시가 넘어서야 일을 끝냈다. 서두른다고 해도 정리하고 오다 보면 툭 하면 열 시가 넘었고, 어떤 때는 11시가 넘을 때도 있었다. 그 시각에 불러내서 야채를 나눠주는 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여름 야채라 냉장고에 보관해야 했다. 우리 집 냉장고에 넣었다가 줄 수도 없어 문자로 도착 예정 시간을 보내고, 집 앞에 나와 대기하게 했다. 그래야 효율적으로 여러 집에 나눠줄 수가 있었다. 돈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몇 푼 되지도 않을 것을 그렇게 나눠줄 수밖에 없어서 괜히 미안했다. 주면서 미안하고, 실례가 아닌가 싶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나눠주었다. 그것이 농약을 하지 않고도 잘 자라준 야채들에 대한 예의 같아서다. 인간에 대한 예의보다 야채에 대한 의리가 앞섰다고나 할까.
나눠주는 기쁨이 7이라면 마음고생은 3이었다. 그래서 꿋꿋하게 나눠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