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할 수 있게 해줘

단상들

by 시선siseon

1.


루틴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늘상 키보드를 두들기며 글을 썼던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도구가 휴대폰밖에 없을 때 이렇게 어찌할 바를 모른다. 글을 쓰고자 했으나 결국 단상을 쓸 수밖에 없는 미저리. 노트북을 켤 수 있는 공간을 달라. 빛을 달라. 자유를 달라. 절박하면 껌종이 뒤에도 그림을 그린다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닌가 봅니다. 이렇게 계속 제한당하면 결국 전의를 상실하고 글 한자 못써 자아를 잃은 무지렁이가 되고 말겠지요.


2.


이 상처는 평생 함께하게 될 단 한 사람 에게만 말하겠다는 정도의 상처를 품고 사는 건 대체 어떤 마음일까(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누군가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었었다는 이유로 그 마음을 평생 들킬까 맘 졸이며 죄책감에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갖다 바치는 마음은(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상처가 너무 깊으면, 아니 스스로 너무 깊이 숨겨버린 상처는 치유될 길도, 위로를 받을 길도 없거늘. 한 번만, 그 상처가 너무 깊이 숨어버리기 전에 누군가 한 번만 그 상처를 보듬어 줬더라면, 위로해 줬더라면 어땠을까. 그럴 수 있는 기회를 누군가에게 줬더라면 그들 자신도 조금은 더 가벼워 질 수 있었을텐데. 가려진 마음이 너무나 무겁다.


3.


아이를 키우면서 단 한 가지 다짐했던, 혹은 바랬던 것이 있었다면 아이가 해맑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린 아가가 하는 행동인데 어딘가 낯설지 않은 느낌. 말로 표현해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 건지, 무슨 생각인지가 저절로 알아질 때, 문득 깨달음이 왔었다. 나구나. 나와 닮아서 그냥 이해되는 것이구나. 그렇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기시감은 그 모습이 나의 '원형' 같아서였다. 아. 가장 순수하고 해맑은 형태의 나라면 이렇게 행동하겠구나. 혹은 했겠구나 라는 깨달음에서 오는 낯섦. 그래서 생각했었다. 이 아가의 해맑음은 지켜주고 싶다고.


그러나 역시, 무언가 바란다는 마음조차 욕심이었을까. 이미 세돌이 지난 아가의 행동에는 벌써 생각이 겹쳐 보인다. 투명했던 아가의 마음이 더 이상 비쳐 보이지 않을 때 부모는 그저 당혹스러울 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알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어른이 편하자고 아이에게 이러저러한 것들을 이미 잔뜩 강요해버린 것은 아닐까. 조금은 더 너와 온전히 가깝고 싶었는데. 벌써 내가 모르는 부분이 생겨버린 아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그래. 부모 노릇이 처음이라 아직 너무나 갈길이 멀구나. 처음부터 잘 할수 없는 부모노릇에 버벅이는 동안 아가, 네가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기를. 부족하고도 모자란 모습에 네가 너무 일찍 갖혀버리지 않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강태, 그 찌질함의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