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빌린 지 정확하게 한나절 반. 어제저녁 6시에 빌려 나와 정확히 오늘 밤 12시경,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총 521페이지. 원래 글을 좀 빨리 읽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 소설은 정말로 빨리 읽었다. 그만큼 몰입해서 읽은 소설. 그리고 소설을 읽고 난 단상 세 가지.
1.
그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이번만큼이나 우연히, 집어 들고 금세 다 읽은 그의 소설이 있었다는 것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 책 앞뒤를 뒤적이다 알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기억이 안 났던 건 심지어 이북으로 우연히 읽었기 때문이었다. 후에 실물 소설책의 두께를 보곤 적잖이 놀랬더랬지. 내가 그렇게 순식간에 읽었던 책이 이렇게 두꺼운 책이었나 하고. 그러니 진정 인정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정말 몰입력이 최고구나. 다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정말 이 이야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끝까지 놓지 않게 하다니. 일본문학답게 번역이 잘 된 탔도, 오랜만에 접한 소설에 신선한 소재가 흥미진진했던 탔도 있었겠지만 몰입력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스토리라인이다. 어떤 소재였든 이렇게 지루할 틈 없이 각각의 인물들의 캐릭터가 생생 살아 있으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절묘한 타이밍에 이어지는 구조가 스릴만점이다. 읽는 중간중간 몇 번이나 온몸이 쭈뼛한 소-오-름을 경험했다면 표현이 충분할까. 다시 생각해도 절묘한 이야기 전개다.
2.
그렇지만 소재의 신선함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라플라스의 악마. 모든 물리적 현상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한 존재자가 있다면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 물리학자, 라플라스. 그리고 그런 초월적이고도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그 존재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했다. 허무맹랑과 있을법한 이야기의 사이를 절묘하게 왔다 갔다 하기 너무나 좋은 그 이론적 존재. 크하. 어찌 이름마저 이렇게 이쁘단 말인가. 그렇게 판타지도 아니면서 판타지에 가까운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끌어낸 작가의 능력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3.
그리고 마지막. 소설을 덮고 옮긴이의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역작을 써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인데, 이 소설을 완성하기 전에 작가는 200매가 넘는 양을 이미 집필해놓고도 아무래도 파기해야 할 것 같다며 두 번이나 써놓은 원고를 엎고 처음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이 소설을 탈고했을 때 편집부의 환희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고. 이렇게나 잘 읽히는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이 모든 이야기를 구성하고 만들어낸 작가의 고뇌가 얼핏, 느껴진다. 역시. 일필휘지의 기적은 없다는 것. 한참을 쓰던 소설을 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어떤 글이든 한번 글을 쓰고 나면 퇴고는 곧 죽어도 하기 싫어하는 나의 치기 어린 태도 따위를 무릎 백번 꿇고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대목이다. 다시, 처음부터. 그 처음부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자꾸 생각해보고 싶어 졌다.
오랜만에 읽은 장편소설이 재미있었던 탓에 당분간 장편 소설, 장편 소설을 쓰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것 같다. 무엇이든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사람은 존재하고, 그들 덕에 또 하루가, 하루 반나절이, 그리고 여운이 남을 하루하루가 풍만하게 채워져 무척이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