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미하는 순간"이다. 누군가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어떤 것을 접하고, 음미하고, 그 정성을 쏟은 누군가의 마음과 조금이라도 교감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예를 들면, 어떤 예술 장르를 접할 때가 그렇다. 누군가의 그림, 음악, 영화, 소설 등 무엇인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들. 물론 공감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어떤 작품들은 때때로 홀린 듯 마음에 와 닿는다. 의미 없는 선 그래프 같이 매우 간단해 보였던 조형물이 알고 보니 자본주의 사회의 명과 암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반전을 선사할 때, 기교가 없는 목소리로 읊조린 노래에서 작사가의 에필로그에 담긴 절절한 마음이 절실히 느껴질 때, 한여름 밤의 꿈같은 사랑의 열병이 영화를 보고 난 며칠 후에도 내 사랑인 양 자꾸만 가슴 설레게 할 때, 나 스스로도 부정하고 싶었던 모순적인 감정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을 때. 그렇게 공감하고 음미하는 순간, 백 마디 말을 나눈 것보다 더한 친밀감이 원작자에게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늘 전율에 가까운 희열을 느낀다.
매일을 함께하는 식음료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밥 한 끼, 맛있는 빵과 디저트, 정성을 담아 내린 커피 한잔을 접할 때 느껴지는 만족감. 특히 매일 커피 한 잔을 강박적으로 찾아 헤매는 나에게 그날의 커피는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잘 관리된 원두가 잘 내려져 다채로운 향과 맛, 풍미를 뿜어낼 때 그 한 잔을 음미하는 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순간이며, 그렇게 충분히 이완되고 만족스러운 순간을 가진 후의 나는 그 전의 나보다 조금 더 잘 정돈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음미하는 순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것, 그것을 "공유하는 순간"이다. 내가 희열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 표현하고 또 누군가와 공유할 때, 그 감동은 흔한 말로 정말 “배가 된다”. 하루하루가 너무 성실하게 계속되어 삶이 고단하다는 드라마 속 대사의 여운을 타인과 공유하며 술 한잔 기울일 때, 시간이 많지 않지만 미술관의 모든 곳을 돌아보기보다 한 작품 앞에서 어깨를 맞대고 말없이 하염없이 앉아 있을 때, 한 잔의 와인이 주는 풍미가 떠오르게 하는 갖은 음식을 서로 끊임없이 이야기할 때, 꼭 읽어보라며 건네받은 책 한 권에서 너무나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고 공유할 때. 그렇게 내가 느낀 것에 타인이 느낀 것이 더해져 경험의 총합이 무한히 확장되는 순간이 있다. 혼자만 간직했더라면 금방 잊혔을지 모르는 기억들이 타인과의 추억이 더해져 한 장면 한 장면 마음에 남는다.
한 때, 왜 사는지에 대한 정의를 한 문장으로 내리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왜 사는지, 반드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찾고, 그 결론을 가지고 싶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사는가? 돈은 벌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사람을 많이 사귀기 위해서 사는가? 그래서 누구, 혹은 누군가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사는가? 혹은 지위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사는가? 그렇게 얻은 지위와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수히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댔다. 하지만 그렇다.라고 대답했을 때 마음이 벅차오르는 단 하나의 질문은 결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날따라 총 천연색으로 눈부시게 아름답게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것을 누리려고 사는구나. 자연이 주는 경이와 숭고함,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재현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인간의 노력, 그 노력을 소비하고 공감, 어쩌면 재생산하면서 느낄 수 있는 연대의 순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불변의 명제에 따라 내 경험의 폭을 끊임없이 넓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이것이 그저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 내야만’ 하는 고달픈 삶을 견딜 수 있는 공감과 공유, 연대의 힘이 되겠구나 했다.
그래서 그렇다. 무엇인가를 음미하는 순간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공감과 공유를 통해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 두 번째로 중요하다. 어쩌면 공유의 연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내가 먼저 음미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유는 불가능하기에 음미가 먼저다. 그렇게 음미하고, 혹은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음미할 수 있는 것을 주면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