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두 번째로 절망적인 순간

by 시선siseon

이해받지 못한 말들이 허공을 떠돈다.


그가 한껏 힘겨운 얼굴로 더듬더듬, 자신의 힘듬과 억울함을 주억거리는 동안 나는 자꾸 한 그림이 떠올랐다. 이브 아널드의 모스크바에서의 이혼. 아마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한 법정의 대기실쯤 되리라. 이혼을 앞둔 부부들 몇몇이 앉아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법 젊어 보이는 그들이 있다. 차마 서로를 보지 못하고 반대 방향, 혹은 서로가 시선에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먼 곳을 응시하는 남녀의 얼굴에 아픔과 슬픔이 생생하다. 여자의 눈에는 얼핏 눈물이 보이는 듯도 하다. 저 눈물은 슬픔의 눈물일까, 회한의 눈물일까. 머리를 쥐어뜯듯 얼굴을 가리고 손을 괸 남자는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푹 숙여 뒤틀린 그의 뒤통수엔 괴로움이 선연하다. 그 괴로움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후회? 혹은 분노? 아픔?


허공으로 무수한 말들이 떠돈다. 그 자리에 앉기까지 그들에게는 무수한 일들이 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온 것은 그 모든 일들을 겪고 보니 이제 더 이상 그들은 결혼을 약속하던 그 아름답고 행복하던 순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확신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명확할 뿐. 그 명료한 결론에 천 번도 넘게 도달해 왔겠지만 막상 이별의 순간은 너무나 아프다. 그래서 아직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어떤 묘책이 있지는 않을까, 다급히 무수한 말들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점점 다가오고 역시나 그런 마법 같은 해결책은 있을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관계에서 그 명확한 결론까지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서로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클리쉐가 생기는 순간이다. 어차피 말해봐야 이해할 수 없겠지.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대는 저렇게 이야기할 것이고, 그럼 의례 이렇게 되겠지. 눈에 뻔히 보이는 결말이 하나의 희망도 품고 있지 않을 때 행동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게 포기와 체념이라는 단어가 관계에서 굳은살처럼 자라나는 것. 뻔히 보고 있지만 속수무책일 뿐이다.


눈앞에 앉은 남자가 말해봐야 싸우기밖에 더하겠어로 시작해서 어차피 너는 이해 못하겠지만으로 끝나는 문장을 내뱉는다. 클리쉐가 생기는 것이 싫어서 억지로 캐물어낸 그의 서운함이 결국 날카로운 칼이 되어 다시 나를 할퀸다. 아, 이 조차도 클리쉐인가. 상대는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혹은 배려를 이유로 본인의 서운함을 말하지 않지만 냉랭한 분위기가 답답한 내가 이유를 묻다 보면 결국 싸움으로 이어지는 패턴.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평소와는 달리 말없이 듣기만 한 나의 눈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서러움이 눈물이 되어 뚝뚝 흐른다.


관계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시간이 지나도 잊힐 수 없는 상처의 말이 무수히 오간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일 테다. 하지만 관계에서 클리쉐가 생기는 순간. 그 순간은 어쩌면 드러난 갈등보다 더욱 확실히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에 결코 뒤지지 않는 두 번째 절망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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