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뒤죽박죽 엉망일 때, 집착적이게 커피를 찾는다. 한 모금. 한 모금이라도 좋다. 알맞게 내려진 풍미가 가득한 커피 한잔이면 토할 것 같은 이 감정 찌꺼기들이 한결 내려갈 것 같다.
오래 묵은 감정인데도 좀체 괜찮지가 않다.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싫다는 감정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고, 서슬 퍼렇게 남아있다. 다시 기어 나올 때마다 나오는 길 마디마디에 상처를 낸다. 베어버린 상처를 1초 만에 봉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피를 닦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인 후 다시 살끼리 붙어 그 흔적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어 나오는 데는 단 1초면서.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다. 나는 거의 누워있었고, 그는 서있었다. 당장이라도 폭력을 쓸 준비가 되어있던 그는 - 아니다. 소심해서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 - 선을 넘고 있는 자신의 거들먹거림에 취한 것 같았다. 자신도 그 순간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 알았더라면 그 순간을 참을 수 있었을까. 간신히 타인에게는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 순간을 후회한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그를 아끼는 이에 의해 각색된 버전이겠지. 믿지 않는다. 언제나 탐탁지 않았을지 모른다 해도 분명 그를 아끼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모든 걸 박살 내버린 그 순간.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이제 남이다. 앞에서 웃을지언정 언제든지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남. 그 날 이후 그는 그 영역에 있다. 적어도 그를 제외하고 내 사람의 바운더리에 그 영역에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제든지 상황이 틀어지면 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는 사람. 물론 그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다시는 마주치지 않는 쪽을 선택했으리라. 그랬어야 하고, 계속 그래야 한다. 이제와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내 영역을 밀고 들어올 자격이 그에겐 없다.
그 얼굴이, 나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던 그때의 얼굴이 지금과 단 한치도 나에겐 차이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자신은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박제된 얼굴. 그의 얼굴은 언제나 그 폭력을 쓰려던 순간이 박제된 얼굴이다. 그 박제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글을 쓰며 깨달았다. 그 박제된 얼굴이 오직 그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을. 폭력은 체벌과 다르다. 제 분에 못 이겨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신들이 나의 육체 하나쯤 짓이겨버리겠다는 그 몸짓. 나에게 폭력을 가하려 했던, 그리고 폭력을 가했던 그 얼굴들은 모두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어떤 부정적 감정들은 그것을 품고 사는 것 자체에 소요되는 에너지가 너무 큰 나머지 갖은 감각을 동원해서, 혹은 운이 좋으면 어느 순간에 저절로 그 감정들과 화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의 기억까지 애를 써 이해하고 화해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남겨두고 아프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더욱 경계할 것이다. 어떤 순간에도 폭력은 안된다. 폭력이 지나가고 난 뒤의 이 이면을 똑똑히 기억해둘 것이다.
이제 나는 이 기억에 대해서 더욱 명확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 선택에 책임을 질 것이다. 더 이상은 이 감정에 빠져 허덕이지 않으리라. 이 기억은 내가 선택해서 남겨놓은 기억이다. 상대가 끝까지 외면하고 책임지지 않은 이 폭력의 기억. 그 박제된 얼굴을 남겨둠으로써 나는 그들과 같은 괴물이 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