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관성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그렇게 춥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외치며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곳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왔을 때, 내가 한 일은 몇 달간 도저히 손에 잡히지 않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 역설. 가장 싫어했던 공간에서야 비로소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다시 시작되는 아이러니란.
그러니 해야 할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도 그 "관성"을 심는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는 글쓰기 말고도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그 수많은 일들을 하느라 글쓰기 따윈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글을 쓰지 않는 삶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글을 쓰지 않는 삶. 그것은 한참을 지내다가 문득문득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듯한 허기를 느끼는 것.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하루를 수행해 낸 의미가 모여 일상을 가치 있게 살아간다는 그 기분을 잊고 사는 것이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나에게 득이 되면 하고, 아무리 하고 싶어도 나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당장 글을 쓰는 것 외에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비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고 그래서 가장 큰 유혹이지만, 사실은 나에게 아무 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지혜롭게 살 것인가. 지혜롭게 살 지 않을 것인가. 나의 선택이다. 그러나 지혜롭게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순간의 고통을 유발한다. 당면한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따라서 지혜로운 삶을 살려면, 그리고 그것이 고통스럽지 않으려면 결국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을 깨쳐야 한다.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질 것인가. 순간에 집착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장소의 관성이라도 만들자. 습관은, 관성은 무서운 것이니 의미 있는 일을 하나의 루틴으로, 의식으로 만들어 순간의 욕구와 욕망이 끼어들 자리를 줄여본다. 글을 쓰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