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리듬

by 시선siseon

누구도 나의 우울을 대신 설명해 줄 수 없을 때, 내가 내 입 밖으로 세세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나의 우울과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끌어안고 안절부절못할 때. 그때만큼 사실은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올 때가 없다. 누군가는 나의 우울을 공감해 줄 수도, 위로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내가 스스로 그 우울을 설명해내야만 한다. 얼마나 잘 설명해내느냐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이해와 공감의 정도가 심지어 달라질 수 있으니 그 설명 또한 매우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어떨 때는 매우 공을 들여 설명하고 싶어도 그 우울을 나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으니 난감하다. 어디서부터 이 감정이 시작된 것인지, 무엇이 가장 나를 슬프게 하는지, 그 모든 것을 파악해내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글을 쓴다. 일단 노트북을 켜고, 제목을 입력하세요 만이 채워진 새하얀 화면에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하면 엉켜진 실타래의 한쪽 끝을 당긴 것이다. 그렇게 당겨진 실타래의 끝이 차분차분 풀려나오면 그날의 글쓰기는 성공이다. 그러나 당길수록 더욱 뒤죽박죽 꼬여 더욱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때면 마무리하지 못한 글이 혼자만의 공간에 쌓이고 만다. 나의 우울. 내가 소유한 양 사랑스럽게 불리는 이 나의 우울이 오늘도 나를 잔뜩 휘감고 있다.


우울을 한층 더 극적으로 만들어줄 장치라면 단연 비가 최고다. 비가 내리는 창밖은 어떤 소리들을 묵음으로 만들어 준다. 세상의 소음이 쏴아- 하는 빗소리에 가려질 때, 머릿속에서 들리는 온갖 마음의 소리들은 볼륨이 더욱 커진다. 차라리 한 판 울어버려라. 어떨 때는 물리적인 행위가 영적인 행위를 지배하기도 하니까, 눈물은 자꾸만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지배하는 감정들을 내 몸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로맨스 중독자의 최후가 무엇인지 아는가. 로맨스 중독자의 최후는 더 이상 로맨스에 설레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로맨스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상 로맨스에 "뻔한 사랑이야기"와 "뻔한 결말"을 운운하게 되는 순간, 로맨스 중독자의 삶은 끝난 것이다. 우울의 종말은 생각을 멈춤으로써 시작된다. 내 안의 것을 비워내고, 그 빈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우지 않는다. 생각하기보다, 느끼기보다는 조금 멍청해지는 쪽을 택한다. 눈앞의 것이 우스우면 웃고, 눈앞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한다.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그렇게 밀려오는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우울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순간의 삶에 감사하게도 된다. 일상의 리듬. 오늘도 그 안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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