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나뭇잎이 반가워서,

by 시선siseon

창밖에 무성한 나뭇잎이 지고 또 피는 걸 보는 것이 좋아서 커튼도 달지 않았어. 겨우내 앙상한 가지만 남아 온 집안이 밖에 환히 보일까 정말로 커튼을 달아야 하나 고민할 때면, 불현듯 눈이 소복이 내려 쌓여 그 빈틈을 채워주곤 했거든. 그리고 드디어 봄. 레몬색에 가까운 연둣빛 잎이 손톱만큼,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손마디만큼 자라 있는 모습은 어떤 꽃단장 보다 집에 봄의 기운을 물씬 가져다줘.


저렇게 혹독한 계절을 견뎌내고 새잎을 틔우는 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혹은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1분이라 해도 그 순간은 완벽하다. 부족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그래서 행복해. 비록 창밖의 신비와 달리 집안은 난장판이고, 할 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지만 뭐 어때. 그 풍경이 나에게 주는 감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오롯이 몰입하게 해 주거든. 그런 순간을 더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겨놓고 싶게 하고. 그럴 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해. 나에게 행복은 그런 거야.


일상의 고통과 불행이 불현듯 찾아와도 나는 계속 행복을 말할 거야. 행복이 눈 한번 깜짝하면 사라질 순간의 상태에 불과하더라도, 그래서 사실은 그만큼 쉬이 찾아오기도 하거든. 계속 행복을 발견하는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나는 불행보다 행복을 더 찾고, 더 많이 느끼기를 매 순간 선택하는 거야.


얼마 전에 한 전시를 갔어. 80세 할머니가 그린 그림들을 전시해놓은 것이었는데, 같이 갔던 지인이 했던 말이 너무나 와 닿았어. 어떻게 이렇게 성실하게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순간들을 포착해서 그림으로 옮길 수 있을까 했던 나의 말에, 그림은 그분에게 감동의 순간들을 남겨두는 방식일 뿐이라고 했거든. 그래, 맞아. 나도 그런 감동의 순간들을 남겨두고 싶어. 그게 나에겐 글이 되겠지.


일상에 무게에 짓눌려 이 행복을 놓치지 않으리라고,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연둣빛 나뭇잎에 속삭여본다. 네가 있어서 나는 그렇게 해낼 거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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