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귀한 줄 알라고 하셨다.
가까이 지내는 멘토분이 늘 하시는 말이 있다. "사람 귀한 줄 알라"고.
당연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자꾸만 곱씹어지고, 그러다 보니 결국 내가 사람을 보는 방식에 까지 생각이 도달했다. 나는 정말 사람 귀한 줄 아는 사람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꽤 빠르게 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는 편이었다. 말하는 방식, 눈빛, 제스처나 행동, 말버릇 등을 보면 쉽게도 낯선 사람을 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어떤 유형의 사람이라고 금세 정의하곤 했다. 아 저 사람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속 이야기를 쉬이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혹은 사교적인 취미를 공유하고 음식이나 장소에 그리 예민하지 않은 타입이구나. 저 사람은 감정적인 포인트를 잘 캐치하고, 쉽게 동의하지 않으며 그래서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한 타입이구나, 정도. 더 단순하게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좋아할 타입인지 소주와 맥주를 즐길 타입인지, 어떤 책이나 전시를 좋아할 타입인지 정도다.
거기까지면 좋으련만, 유형을 분류하고 나서는 꼭 호와 불호를 결정한다. 그래서 나랑 안 맞겠구나, 맞겠구나. 더할 때는 저런 유형은 별로야, 질색이야하고 손사래를 친다. 이게 고질병인 건 심지어 TV 예능프로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런 평가질을 해대는 거다. 예능에서 비치는 모습만으로도 그 사람을 나름대로 분류하고,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다는 식이다.
사람을 그리 쉬이 분류하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을 쉽게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다 싫다와 같은 '판단'과 '평가'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미 분류 자체가 판단과 평가 위에 형성되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특징이 있고, 장점과 단점을 나누는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는 것이거늘 나는 이미 어떤 특징들을 장점이라, 단점이라 단정 지어 버렸는지 모른다.
사람은, 단점과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고유의 특성과 기질, 성질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그저 나와 '다름'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장점'과 '단점'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순간, 편협한 색안경을 끼게 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를 두고 이런 편협한 색안경을 끼고 평가할 권리가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행동이 얼마나 불합리한 행동인지 곧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그럴 권리가 없다. 한 사람의 특징을 함부로 장점과 단점을 나눠 판단하는 일 따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기준으로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고, 판단해왔다는 점.
인지 했으니, 이젠 바뀔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