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혹사시키면서 일을 하는 건 정상이 아니야

by 시선siseon

여느 때처럼 카페에 왔다. 아이스 라테를 한잔 시키고 쿠션에 기대어 앉아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쉬어 본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그럼.. 마음을 한 숨 놓아볼까. 그런데 내려놓은 한숨이 끝나기 무섭게 울컥, 눈물이 차오른다. 아, 이게 아닌데.. 그제사 깨닫는다. 나 아직 안 괜찮구나.


몸을 혹사시키는 누군가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건 어쩌면 나의 트라우마 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늘 아프다 아프다 죽겠다 하시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는 엄마를 보는 일이 늘 그렇게나 속상했다. 계절마다 때마다 그런 일들은 끊임없이 생겼는데, 예를 들면 때때마다 새빨간 고추가 몇 포대씩 오면 밤새 그걸 닦는 식이었다. 언제는 도토리, 하다못해 안 깐 마늘도 몇 박스씩, 심지어 유자도, 매실도 철맞춰 몇 박스씩 집으로 왔다. 그러면 엄마는 이걸 언제 다하니 하시면서 마루 한가득 신문지를 깔아놓고서는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출 줄 모르셨다. 그렇다. 쉬엄쉬엄 틈틈이 따위는 엄마의 일 사전에 없었다. 시작하면 몇 박스나 되는 걸 끝날 때까지, 밤이 새 거나 말거나 다 하셔야 했다.


누가 봐도 고된 작업이었고, 실제로 고되었고, 그래서 끝나면 며칠씩 앓아누우시니 보는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대체 왜 저러시는 걸까.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간곡히 말려도 보고 짜증도 댓 발 내보고, 그러다 그래.. 어차피 하실 일인데 싶어서 같이 주저앉아 손을 좀 보태보아도 좀 많아야지. 그 모든 일은 늘 엄마의 몸살로 끝났고, 그러고 나면 나는 매실이니 유자니 마늘이니 정말 꼴도 보기 싫었다. (그 후유증인지 지금도 나는 '수제청'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조금은 이해한다. 시골에서 큰 엄마에게 그것은 노동이자 유희였고, 숙제이자 성취감을 주는 어떤 것이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때의 기분, 그 무력감까지 잊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도, 크고 나서도 엄마가 아픈 게 제일 싫은데. 그런 거 하나도 안 먹고 싶으니까 제발 그런 일 좀 하지 말고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아프다는 소리 하지 말고 웃고 있는 엄마가 보고 싶은데. 늘 일하거나 아니면 일한 뒤에 힘들어서 죽을 듯이 지쳐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아프다고 병원이나 가냐고. 그러나 아무리 말해도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그 속상함. 무력감.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만 아팠으면 좋겠다는 그 간절한 마음. 그 모든 것이 이렇게나 생생하다.


그래서 제발,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몸을 혹사시키면서 일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그 말. 그만하라고 하면 내가 더 힘든데 네가 왜 그러냐고 하는 그 모진 말투. 네가 내 인생을 살아본 것도 아니면서 뭘 아냐는 선긋기. 내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어도 그게 정상은 아닌 거라는 걸, 제발 깨달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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