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여성의 시선

by 시선siseon

사랑을 선택하기엔,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소중한 여자가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진다 해도 그 삶을 선택할 수가 있을까. 이 이야기가 더욱 극적인 이유는 그 대상이 왕이었고, 그녀는 후궁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종영한 '옷소매 붉은 끝동' 드라마의 설정은 현재 시대로 생각하면 재벌에게 프러포즈받는 가난한 집 여자 정도의 이야기로 현대화될 수 있고, 그런 이야기라면 흔하디 흔한 주말 드라마의 소재이니 놀랍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놀라웠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 정조의 시대에 여성의 삶의 경로란 뭐 얼마나 다양했을까. 타고난 신분에 따라 이미 정해진대로 사는 것이 너무나 일반적인 그 시대에서,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진다는 것이 흔했을 리 없다. 남들과 다른 자신. 모두가 바라는 것을 자신만 바라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여자가 조선시대에도 분명 있었음을 묘사한다는 것은 뭐랄까, 드러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너무나 당연한 진실을 묘사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후궁으로써의 운명을 거부하려 했으나 결국 후궁이 된 그녀에게 자신을 연모하냐고 끊임없이 묻고서는 '상관없다. 어차피 너는 내 것이니까'라는 문장을 반복적으로 내뱉는 정조에 대한 묘사. 너무도 쉽사리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부당하는 정조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구조가 저 문장으로 인해 다시 불편해진다. 좋은 임금이라 해서 좋은 부군은 아니지 않느냐는 대사 역시, 쉬이 정조에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독자를 다시 여성의 시선으로 끌어온다.


여성의 시선. 남자에겐 사랑과 야망이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성에게는 사랑이 가장 우선시 되거나 혹시 일을 우선시하는 건 소위 '독한 여자',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은 여자'로 묘사되는 것이 흔한 플롯에서 여성의 시선이 이끌어가는 로맨스란 진정 흔치 않다. 왜 남성만 로맨스와 야망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가. 심지어 로맨스는 성공한 남자에게 당연히 따라오는 전유물 같은 것이어야 하는가. 로맨스와 야망을 동시에 추구하는 여성은? 그 시대의 여성의 야먕이란, 그저 '지아비'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정도였을 텐데. 원하는 곳을 원하는 때에 가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는 정도(지금으로 치면 '왜 왕이 될 수없는가'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이룰 수 없는 크나큰 사치였던 시절에 여성이 가지는 고뇌와 무기력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결국 자신의 삶을 포기했기 때문에 평생 지고 갈 수밖에 없었던 그 우울함과 갈등의 묘사는 이 드라마를 충분히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분명, 우리 세대는 과거와 달리 남성과 차별받으며 자라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육아, 취직 시장에서 남성과 다른 경로를 갈 때, 각자가 느끼는 부침이 있다. 그것이 지금,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음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 만으로 나는 큰 유대의 힘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런 드라마가 건네는 위로는 분명 존재하고, 그래서 그저 고마웠다. 여성의 시선은, 더욱더 드러나야 한다. 우선은 드러나는 것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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