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큘러스2, 두 번 사세요!

by 시선siseon

작년에 산 물건 중에 가장 잘 산 걸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오큘러스 2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본격 오큘러스 2의 구매를 부추기는 영업 글이다.


필자에겐 이미 VR기계와의 슬픈 인연이 있다. 그 옛날 휴대폰을 노트 8로 바꾸던 시절, 무려 '사전 예약' 선물 목록 중에 삼성 VR기계가 있었다. 연구직이지만 관련 업종 종사자 이기도 하고 신랑도 호기심이 가득하던 바, 다른 모든 선물을 제쳐두고 무려 추가로 5만 원을 결제하며 그 기기를 선택했더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가뜩이나 무거운 VR기기에 휴대폰을 '딸깍!'소리 나게 끼워 써야 했던 그 기기는 우선 너무 무거웠고, 또 무거웠고, 무거웠다. 이미 무거워서 끼는 것도 곤욕인데, 이렇다 할 콘텐츠도 없었다. 그러니 몇 번 쓰지도 않고 바로 장롱행이었다.


그런 쓰디쓴 경험이 있는 바, 오큘러스에 대한 나의 반응 역시 시큰둥했다. 그래도 이번엔 휴대폰을 딸깍 끼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여전히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기계를 좋아하는 개인의 성향을 이기지 못하고 거금 40만 원을 들여 오큘러스 2를 들였다.


처음 꼈을 때 느낌은, 그 옛날 삼성 VR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멋들어진 방이 펼쳐진 가상 세계. 그런데 이번엔 '조이스틱'이라는 큰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 차이는 VR기기와 함께하는 경험 자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옛날 VR이 할 수 없었던 동작 인식이 심지어 물리적 기기를 통함으로써 매우 정교해졌다. 휴대폰을 끼우지 않는 것, 조금 덜 무거운 것 등도 핵심적인 변화지만 조이스틱의 등장으로 VR에서 할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일의 범주 자체가 완전 달라지게 되었다.


가장 유명한 킬러 앱인 '비트 세이버'를 먼저 설치했다. 음악에 맞춰 날아오는 큐브를 베어내는 게임이다. 일단, 양손의 조이스틱이 광선검으로 변한다. 그리고 촤~ 촤! 내 동작이 광선검을 통해 리얼하게 큐브를 가르는데 허공을 가르는 손짓이 민망하지 않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 그만큼 몰입하게 된다는 뜻이다. 리듬에 맞춰 휘두르다 보면 몸치에 가까운 나도 제법 절제된 춤을 추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그렇게 한 두곡 하면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그리고 대방의 Thrill of Fight. 마침 오늘의 딜로 할인하길래 대뜸 사봤다. 복싱? 내가 안 하면 신랑이 하겠지 뭐. 그리고 나는 결혼 10여 년 만에 그렇게 몰입해서 운동하는 신랑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냥 땀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다. 기기를 쓰고 눈앞에서 훅, 어퍼컷, 스트레이트를 정신없이 날리며 온 거실을 '리드미컬하게' 스텝을 밟는 신랑을 보는 경험은 뭐랄까, 경이로웠다(나는 복싱이 그렇게 리듬감 있는 운동인지 처음 알았다).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휴대폰으로 미러링 해서 같이 지켜보는데, 보는 나도 몰입이 될 정도였고,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생애 첫 복싱에 도전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악몽을 꾼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주먹으로 때리려는 의지와 나를 때리려는 의지를 가지는 상대를 본 적이 없는데, 코앞에서 나를 노려보던 험악한 인상의 외국인은 너무나 무서웠다! 고작 3분의 경기에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비명을 질렀지만 그 와중에 나의 숨겨왔던 본능과 재능(?)을 발견하였으니. 신랑이 찍어서 보여준 영상 속의 나는 누가 봐도 복싱을 하고 있었다. 신랑의 가이드에 따라 오른손, 왼손을 뻗고 스텝을 밟는 나의 모습은 완전히 처음 보는 내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집에 놀러 온 모든 사람에게 복싱을 시켜본다. 숨겨왔던 자신의 파이터 본능을 한번 발견해 보시라고. 그리고 우리 여성들은, 나처럼 모두 충격을 받는다! 그렇다. 그렇게나 리얼하고, 놀라웠다.


그렇게 내리 3일을 파이터들과 싸우고 우리 신랑은 몸살이 났다. 한 명 깼으면 그만하래도, 다음 선수로 일본 선수가 나오니 '한일전은 못 참지'하고 연달하 해댈 때부터 알아봤다. 온몸을 파스로 바르고서야 살아난 신랑이 걱정되어 나는 다른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게임, '일레븐 탁구'를 깔게 된다.


탁구 게임은 어땠냐고? 게임을 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가상의 탁구대를 짚으려다가 넘어졌다 하면 말 다한 거 아닌가? 한참 치다 보면 가상의 세계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된다. 그리고 잊지 못할 경험이 있었는데, 온라인 상의 다른 플레이어와의 경기를 처음 시도한 날이었다. 무려 새벽 한 시였다. 신랑이 기기를 쓰고, 연결이 된 다음 어떻게 하지? 버벅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준비 버튼을 누르셔야 돼요"라는 애교가 가~득 섞인 여성의 음성이 머리의 기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신랑과 나는 너무 놀랐다. 그래도 일단 연결이 되었으니 어떡하나. 놀라움은 잠시 접어두고 아 네네~ 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도긴개긴 개판인 실력으로 경기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아 서브를 그렇게 주시면 어떻게 해요~'와 '아니 그쪽도 그렇게 주셨잖아요~'가 오가고, '나도 신랑 불러와야겠다'와 '잘 치시는데요?'로 마무리되는 장면에서 아주 기가 찼다. 놀고들 있네가 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고나 할까?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콘텐츠 가격이 1~3만 원대로 비싼 편이고, 머리 크기에 따라 초점이 완벽하게 고정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다(머리가 클수록 고정이 쉽다는.. 흠). 하지만 40만 원 주고 기계 사놓고 돈 아깝다고 콘텐츠 안 살 수 없으니 그냥 사고, 뽕은 뽑은 듯하다. 그리고 심지어 신랑은 안경을 쓰고 있는데, 오큘러스 2부터는 안경을 쓰고 기기를 착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지대를 기본으로 포함해서 준다. 그 지지대를 끼고 복싱과 탁구 정도의 격렬한 운동에 문제가 없으니 어지럽거나 초점으로 인한 문제, 안경으로 인한 불편은 없다.


현재까지의 경험은 고작 앱 세 개에 한정되어 있지만, 추천받은 바로 낚시도 즐기는 사람은 세 시간씩 매일 할 정도라고 하니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기대가 크다. 특히나 사명까지 '메타'로 바꾼 페이스북이 VR기기와 가상세계, 메타버스에 대한 투자 의도는 진심인 듯 하니 오큘러스 기기를 통한 메타의 향후 행보, 콘텐츠 확장에 더욱더 기대를 걸어본다. 어떤가. 이 정도면 충분한 영업이 되었을까? 궁금하면, 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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