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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14. 2022

엄마, 제발 그 설거지 하지 마오(1)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걸 보면 그렇게 화가 났다.


때는 2021년 4월, 가족여행이었다. 항암을 끝내고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가 코로나라는 전 지구적 재앙을 맞아 거의 감옥살이처럼 병원 생활을 하실 때였다. 가뜩이나 타향살이가 녹록지 않은 터에 어디 나갈 수 조차 없게 된 엄마가 병원 생활에 점점 지쳐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엄마 콧바람을 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명분 아래 온 가족이 총출동하는 홍천 여행을 가게 됐다.


우리는 철저한 준비를 했다. 항암치료 이후로 고기라곤 닭고기 밖에 안 드시고 밀가루, 달달한 것 등 안 먹는 게 너무 많아진 엄마와 2박 3일 매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특히나 약을 드셔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삼시 세끼를 드셔야 한다는 것은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도착한 날 점심, 저녁, 다음날 아침, 점심, 저녁, 마지막 날 아침, 점심까지 총 7끼를 모두 숙소에서 해 먹는 식단을 짰다. 그래서 우리 짐은 거의 가정용 냉장고 한 대 쯤을 통째로 옮겼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며, 그렇게 챙기고도 행여 뭐라도 부족할까 마음을 졸였다.


철저히 준비한 탓에 생각보다 여행은 순탄했다. 일단 지인 회원권 찬스를 쓴 숙소 자체가 너무나 크고 좋았다는 점이 매우 유효했다. 2층으로 이루어진 펜트하우스는 아가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쏙쏙 숨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넓디넓은 식탁과 주방, 거실 등도 절로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런데 그 무탈하고도 기쁜 여행 중에 딱 한번, 엄마와의 큰 갈등이 있었다. 내가 거기 숙소를 잡은 큰 이유 중 하나는 '식기세척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0명이 넘는 대 식구가 삼시 세끼를 다 해 먹는데, 그 모든 설거지를 다 해대려면 그 고생이 어떨지가 눈에 훤했다. 그렇지만 평생 식기세척기라는 걸 사용해본 적이 없는 엄마는 개수대에 그릇이 쌓이는 꼴을 못 봤다. 식기세척기를 돌리려면 그릇이 그래도 좀 쌓여야 하고, 대식구라 그래 봤자 두 끼 정도, 혹은 중간중간 과일이나 간식을 먹는 그릇을 잠시 뒀다 다음끼 식사 후에 같이 돌리면 되는 정도인데 엄마에겐 그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다. 열식구가 꺼내 쓰는 물컵을 볼 때마다 씻으려 하고, 과일 깎은 접시 뭐 덜어먹은 그릇 등 뭐든 나오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시려 했다.


몇 번 안 해도 괜찮다고 반쯤 윽박지르던 내가 식사 후에 아가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잠시 주방을 떠난 사이, 돌아온 자리에서 엄마가 또 설거지를 하고 있는 걸 보고 나는 결국 폭발했다. 하지 말라니까!! 대뜸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엄마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너무 기가 찬 나머지 눈물을 그렁그렁 하시며 주방을 나오셨다. 어떻게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 있냐고.


누가 봐도 소리 지른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 좋은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기에 나는 재빨리 제정신을 차리고 엄마에게 사죄와 사과를 고하며 같이 한바탕 울었다. 그렇지만 나도 내가 왜 그렇게까지 이성을 잃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너무 싫고, 싫고, 또 싫은 마음과 분노가 한데 엉켜 불덩이처럼 터져 나오는 것을 제어할 수 없을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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