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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Jan 18. 2022

다시, 주방에 서다

'요리' 트라우마

오늘 저녁으로 된장찌개 끓였어. 


이 평범하고도 평범한 문장을 듣고 내 신랑은 너무나 깜짝 놀란 나머지 "우와아"라는 반응을 보내왔다. 그렇다. 나는 오늘 태어나서 된장찌개를 처음 끓여봤다.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백종원 느님께서 된장찌개는 된장 고유의 맛으로만 간을 하는 것이 제일 맛있다길래 다른 것 안 넣고 된장만 풀어서 끓였는데, 생각보다 간을 맞추려니 된장이 많이 들어가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나중에 들은 신랑은 깜짝 놀라 나를 보았다. 된장을 얼마나 넣은 거냐고. 쌈장이든 고추장이든 한 숟갈 넣지 그랬냐고. 뭐, 무슨 상관이냐. 여하튼 엄마가 주셨던 누군가 정성스레 직접 만든 된장이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처음 내 집, 내 주방이 생겼을 때는 그래도 요리를 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가져본 살림에 호기심으로 뭐든 만들면 뚝딱뚝딱 요리들이 잘 나왔다. 먹고 싶은 어떤 것이든 인터넷이 너무나 친절하게 잘 레시피를 알려주는 세상에서 해보니 심지어 손이 빨랐던 나는 요리가 왜 힘드냐며 무심한 얼굴로 각종 요리들을 해내곤 했다(된장찌개와 같은 '평범한'요리는 목록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을 몽땅 깨버리는 일이 있었으니.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주방 앞에 서지 않았다. 


그 사건은 단 한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육아휴직을 했던 내가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인데, 요리가 무섭지 않았던 나는 이유식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 오히려 원래 양식, 원 플레이트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좀 다르게 하고 싶다며 심지어 '프랑스 아이들의 이유식'따위의 책을 살 정도의 호기를 부렸다. 그렇게 시작한 이유식에서 나는 끝없는 절망을 만났다. 모유수유와 이유식을 병행하던 아가는 내가 만든 이유식을 잘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예 안 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평생 일하고 살 것 같은 나름 커리어우먼의 삶을 지향하다가 갑작스러운 육아를 시작했고, 만삭의 몸으로도 회사를 다니다 막달이 되어서야 육아휴직을 시작한 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완전 새로운 삶'이 버거워 진정 '나는 누구인가'(사실 나는 젖 짜는 기계인가 수준의)라는 정체성의 혼란, 옅은 우울을 앓고 있었으며, 신랑이 출근하고 나면 7개월 된 아가와 퇴근하는 신랑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며 블랙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와중의 이유식이었다. 먹고, 싸고, 자는 것조차 충족이 되지 않아 살이 몇 킬로씩 쭉쭉 빠지는 와중에 요리까지 해야 하는 이유식. 그런데 그렇게 짬을 내서 만드는 이유식을 아이가 뱉고, 던지고, 거부할 때의 기분이란. 게다가 이유식의 절망적인 포인트는 얼마나, 어떻게 끓였든 일단 아기가 먹지 않으면 그다음 끼니엔 새로운 이유식을 또 끓여야 한다는 점이다. 한 번 먹지 않은 이유식을 아이가 다시 먹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쉽다는, 간편하다는, 다양하다는 온갖 이유식 책과 인터넷을 뒤졌다. 그래서 심지어 밥솥을 3등분 하는 도구로 한 번에 세 가지 이유식을 끓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끓이면 간신히 셋 중 하나 정도는 먹어주는 정도. 그 조차도 아이가 뱉어댈 땐 정말.. 아이를 두고 밥솥을 끌어안고 울었다. 어쩌란 말이냐고. 냉장고는 이미 그렇게 실패한 이유식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입에 물 댈 기운도 없어 그 남은 이유식들로 끼니를 때우다 한 번 울음이 시작되면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아이와 마주 보고 울다 보면 말 못 하는 네가 무슨 죄냐고, 엄마 자격에 대한 자책감에 시공간이 멈춘 듯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신랑이 시판 이유식을 사 왔지만 시판이라고 딱히 잘 먹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지옥 같은 시간들을 지나고 보니 우리 아가는 그냥 '죽' 자체를 싫어했던 것 같다. 모유수유를 병행했던 것도 이유였던 것 같고(사실 모유는.. 정말 달다. 그걸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하다 하다 후기 이유식, 죽이 아닌 밥으로 일반적인 권고안보다 한 달 정도 빠르게 넘어가고 나니 차라리 좀 먹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넘어갔을 것을. 첫 째를 키우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뒤늦은 깨달음뿐이었다. 


그러고 나서부터 나는 주방을, 요리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 전엔 손이 빨라 어떤 요리든 레시피만 보면 덜렁덜렁 잘 만들어 내곤 하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요리를 하려고 주방에 서면 머릿속이 새햐얘졌다. 공포가 밀려왔다. 요리를 하는 시간 동안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즐겁기는커녕 어디 멱살 잡혀와서 일하는 기분이랄까, 그냥 너무 싫었다. 계속 실패하는 요리를 반 강제로 계속해야 했던 경험은 그렇게 나에게 얼추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렇게 요리에 손을 놓은 지가 벌써 3년이 훌쩍 지났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한 나는 몇 년은 시댁에서 지냈으며, 다행히도 남편이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심지어 매우 잘하신다) 감사하게도 요리에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낸 세월인데, 오늘 다시 된장찌개를 끓이며 이 모든 것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지난주, 엄마와 같이 생활하면서 엄마 곁에서 요리를 좀 거들기라도 한 것이 계기가 되었을까. 뜬금없이 남편도 늦는 날에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식당으로 직행하지 않고 그럼 끓여볼까 라는 생각이 든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실로 오랜만의 의지와 의욕이었달까. 그리고 그 요리의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아들이 잘 먹어주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참, 뭐 하나 쉽지 않은 세상에서 굳이나 트라우마까지 끌어안고 살 것 있나 하고 마음을 내어본다. 그래. 과거는 과거고, 시간이 흘러 내 안의 상처도 제법 아물었나 보지. 그래도, (그 지랄을 하고도)이렇게 잘 커준 아가를 바라보며 주방에 대한 혐오를 이제는 멈춰볼까, 내일은 새로운 요리를 한 번 또 시도해 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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