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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Feb 06. 2022

나를 마주하는 시간

가장 마음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아무 불안과 걱정이 없고, 마음이 편안한 상태. 불만과 분노, 부족함에 대한 자괴나 자책도 없이, 그렇다고 너무 들떠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흥분된 것도 아닌 상태. 고요하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그래서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상태. 


이렇게나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그 완벽한 순간을 떠올리면, 그날의 시공간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어느 날은 햇살이 따스한 바닷가 까페였기도 하고, 어느 날은 누군가의 품 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한 공간은 성당이었다. 퇴근을 했고, 별다른 일정이 없던 날이었다. 날이 좋아 걷다 보니 성당 앞이었고, 마침 평일 미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갔던 그날의 성당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다. 드문드문 앉은 사람들 위로 따스한 느낌을 주는 조명이 켜져 있고, 미사 준비로 부산스러웠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공간. 낡은 오르간 소리로 시작된 미사는 더없이 편안하게 진행되었고 신부님이 읊조리는 감사의 말들은 마치 선율 같았다. 그 순간 느꼈던 '완전히 채워진 기분'은 그 공간 안에 마치 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더없이 편안하고,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이 부족하지 않은 기분. 


어제, 글을 쓰지 않아 정돈되지 않은 나를 논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나를 정돈하는 의식이 반드시 글쓰기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다른 건 또 없었나 하고 고민하던 차였다. 성당이 있었지. 일주일에 한 번, 다녀오고 나면 훨씬 안정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유아방에서 드리는 미사가 너무나 무의미해서 발길을 끊은 지가 어언 2년. 이제 다시 가봐도 되지 않을까, 했다. 


그렇게 오늘 낯설고도 충동적이게 성당으로 향했다. 코로나 이전에 갔던 기억이 전부였던 나는 당연히 복작복작한 주일 미사를 떠올리곤 주차할 곳이 없을까 봐 멀찌감치 차를 대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성당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고, 들어갈 때도 일반 QR코드가 아닌 신자용 코드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었구나. 몇 개의 절차를 거쳐 간신히 시간에 맞춰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나 드문드문한 사람들 틈에 멀찍이 앉았다. 


멀리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입에서 줄줄 나오는 미사 매뉴얼들이 낯설었다. 늘 다닐 때는 일상처럼 외우던 것들이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읊조리던 문구들이었는데 오랜만에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매우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래서, 그 의미가 문득 낯설게 다가왔다. 과거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했었던 걸까. 한 단어씩 생각을 담아 발음하다 보면 어느새 모두의 속도에 뒤처지기 일쑤였다. 


코로나로 간소화된 미사는 모든 음악이 낭송으로 대체되어 매우 무미건조했지만, 그래서 매우 간간히 들리는 음악소리가 더욱 반가웠다. 한때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행복해서 미사를 나온 적도 있건만. 그렇게 노래가 사라져 훨씬 짧아진 미사가 끝이 났다. 무언가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오랜 것들을 낯설게 느끼느라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린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또 하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생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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