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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Feb 11. 2022

가죽공예, 첫 도전!

한 번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걸로

몇 달은 되었을 거다. 우연히 하루짜리 취미를 파는 사이트를 봤고, 거기서 가죽으로 카드지갑을 만드는 키트를 발견했다. 


때마침 삼성 페이의 편안함에 젖어있다가 아이폰으로 넘어와 그동안은 필요가 없었던 카드지갑이 급히 필요한 참이었다. 카드지갑을 사려고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소위 명품이라는 것들은 가격이 납득 불가능했고, 그 납득 불가능을 이겨낼 만큼 예쁜 지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보세를 사자니 만듦새가 엉성하거나 너무 대놓고 명품 짝퉁이거나 혹은 디자인이랄 게 없었다. 사실 내가 물건을 사는 기준 중 하나는 매일 쓸 물건에 돈을 쓰는 것이다. 이건 사놓고 모셔둘 것에 돈 쓰지 말자와 동일한데, 자주 손이 가는 것 일수록 마음에 안 들 경우 그 후회도 자주 하게 되고, 마음에 들면 그만큼 자주 만족감을 느끼기 마련인 탓이다.  


그래서 못 사고 있었다. 분명 카드지갑은 휴대폰만큼이나 매일 들고 다닐 물건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갑이 없는 불편함은 점점 쌓이고 쌓여 이제 그냥 아무거나 사버릴까의 한계에 도달하던 참이었고, 그때 카드지갑을 만드는 키트를 발견한 것이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3만 원짜리 가죽 지갑 만들기 키트를 구매했다. 


처음 왔을 때는 당장 만들어 쓸 요량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친절하게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는 동영상을 틀고는 보다가 중간에 꺼버리고 말았다. 아. 이 동영상을 사기 전에 봤어야 하는데, 라는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었다. 무언가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했다. 바늘을 끼우는 것 방법부터 실 양쪽에 바늘을 매달고 교차 바느질 이라니, 중고등학교 가정 시간 말고 딱히 바느질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 그렇게나 친절한 설명도 머릿속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렇게 결국 만들기를 포기하고 지갑도 아닌 손바닥 만한 주머니에 카드를 넣어 다니며 그냥 불편함을 견디다 보니 벌써 몇 달이 지나있었다. 


그러다 문득, 오늘은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불현듯 그 지갑이 떠올랐다. 그래서 대충 보고 포기했던 동영상을 꼼꼼히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난관은 여러 군데서 왔지만 가장 큰 시련은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는 거였다. 일반 실 보다도 굵은 실과 굵은 바늘로 가죽을 뚫고 바느질하는 것은 상당한 힘이 드는 일이었다. 특히나 맨손으로 반들반들한 바늘을 당기면 바늘이 손에서 미끄덩 빠져나가 손가락에 긴 자국만 남긴 채 바늘은 제자리였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골무'였다. 생에 입에 올릴 일도 없었던 그 소소한 물품, '골무'라는 것은 굉장한 도구였구나를 매우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집을 둘러보던 내 눈에 띈 것은 '목장갑'이었다. 빙고. 목장갑을 끼니 미끄럽지도 않고 힘도 잘 들어가고, 무엇보다 손이 덜 아파서 이거라도 없었음 어쩔 뻔했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뭐 얼마나 바느질한다고 스스로의 유난스러움에 기가 차기도 했다. 뜨거운 밥그릇도 못 잡아서 주방장갑을 찾는 나를 보면 혀를 끌끌 차며 늘 맨손으로 그릇을 통째 쥐고 옮기시던 엄마가 문득 떠올랐다. 하. 진짜. 목장갑 끼고 바느질하고 있는 나를 봤으면 우리 어머니, 뭐라고 하셨을까. 


그렇게 장장 4시간에 걸쳐 지갑을 완성했다. 아니, 마감재를 말리는데 하루가 걸리니 완성은 아니다만 그래도 끝을 냈다. 만들고 나면 되게 뿌듯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초심자 용으로 '쉽게'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된 지갑이 그리 예쁘진 않았다. 그냥, 이런 걸 한 번 해봤구나 정도의 경험치와 어깨 뻐근함(가지가지의 결정판이지), 그리고 나쁘지 않은 가죽지갑이 내 곁에 남았다. 그래도 안 해본 걸 시도한 기분이 나쁘진 않구나. 다음엔.. 가방을 만들어 봐야 하나?! 이왕 할 고생이면 고생을 무진장 하더라도 결과물이 아주 예쁜 걸 선택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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