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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Feb 11. 2022

문래동, 새로운 문화를 답습하는 새로운 문화

문래동이 그렇게 핫하다고 했다. 간판도 잘 없는 힙한 가게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공장의 기계음과 어우러지는 곳이라고. 그래서 무기력한 오늘, 불현듯이 거기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 같은 시기에 코로나까지 맞물려 늘 집 반경 1km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하지만 문래동의 첫인상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밤이 되면 더욱 힙한 곳이니 낮이라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이렇다 할 가게들 대신 기계 공장만 눈에 띄었다. 낯설고 어색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들어간 카페에서 너무나 맛이 없는 커피를 먹은 것도 좋지 않은 첫인상에 크게 한몫했다. 하. 이런 커피를 6,500원이나 받다니. 그 집에 베스트라는 '솔트 커피'는 맛없는 커피에 생크림과 소금을 뿌려놓은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의 생크림이 너무 느끼해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 나는 그냥 집에 다시 갈까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모처럼의 나들이고, 좀 더 둘러보자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이어지는 좁은 골목들을 다니다 보니 그제야 작은 가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소품샵들, 젊은 취향 적절한 와인샵들, 피자와 맥주를 파는 펍 등등. 커피가 맛있어 보이는 집도 몇몇 발견했으나 이미 마신 커피가 있어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게 정처 없이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싱가포르에서 혼자 여행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도 혼자였고, 처음 가보는 곳을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런 여행이 일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하면서 다시 걸었다. 그런데 자꾸만 걸으면서 든 생각은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새롭지 않다는 거였다. 부산에도 이런 곳이 있다. 공구상가가 즐비하던 전포동이 카페거리로 바뀌고, 다시 그 거리의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더더욱 산 쪽으로 밀려난 가게들이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은 대전에도, 김해에도 어디든 있었다. 그러니까, 소위 '~리 단길'이라 불리는 곳 어디쯤에 가도 볼 수 있는 풍경이었던 탓에 걸어도 걸어도 와본 것 같은 기시감,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분위기가 자꾸만 반복되는 것이었다. 


이런 느낌은 어떤 점을 슬퍼해야 하는 걸까. 분명 차이가 없지 않을 텐데 그 미묘한 차이를 감수성 넘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늙음을 슬퍼해야 하나, 아니면 분명 새로 생겨난 문화와 공간인데, '기존의 새로 생겨난 문화'의 클리쉐를 그대로 답습하는 형태가 된다는 사실에 슬퍼해야 하나. 


오늘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해진 문래동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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