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선siseon Feb 09. 2022

'새벽' 판타지

글을 쓰는 시간을 생각한다.


늘 글을 쓰는 시간은 아기를 재우고 난 뒤, 밤늦은 시간이다. 9시경 아이를 재우고 나오면 일단 잠시 숨을 돌려야 한다. 나의 자아보다 더 중요한 아가를 위해 잠시 밀어두었던 내 자아를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면 10시 정도에 노트북을 켜고 자리에 앉는다. 그날의 자아 소모가 심했다면 10시가 아니라 11시, 11시 30분까지도 시간을 끈다.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시 끌어모으기 까지 생각보다 많은 힘이 든다.


그렇다면, 생각한다. 왜 낮은 아닌가. 왜 아침은 아닌가. 보통 새벽 2시경이 되어야 잠에 드는 나에게 이른 아침은 사실상 없는 시간이다. 저혈압에 아침잠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생활 패턴이 늦은 밤이 되어버린 탓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엄두도 내질 못한다. 그리고 낮은, 일의 시간이다.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을 두고 글을 쓰기에 마음에 여유가 없다. 물론, 생각해보면 모두 핑계지만 그렇다 해도 사실 저녁 시간이 나에게 가장 여유가 있는 시간이며 그래서 글을 쓰기에 자연스러운 시간인 것은 맞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하루의 찌꺼기를 정리하는 시간, 의식에 가깝다. 하루를 지내고 글을 쓰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 나는 어떤 사유를 하고 지냈나. 오늘의 화두는 무엇이었나. 살아지는 대로 살았나, 살고자 하는 대로 살았나를 생각한다. 글감이 없는 날이 보통 살아지는 대로 살았던 날, 사유가 없었던 날이다. 그런 날이면 글쓰기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고 나면 그제야 라도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았다는 마음에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다. 그러니 저녁인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이 저녁일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다.


그러나 나의 환상은, 동경은 늘 새벽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는 나에게 '새벽'은 어마어마한 생산성과 효율성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신기루와 같은 시간이다. 늘 잔걱정이 많고 마음의 끄달림에 시달리는 나에게 새벽은 무언가 그런 자잘한 일상의 잔해들로부터 독립된 자유를 줄 것만 같다고나 할까. 막 자다가 깨어 바닥에 깔린 흙탕물에 아직은 물결이 일지 않은 시간. 깨끗한 윗물로 명확한 사고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간. 그리고 덤으로 얻어진 시간.


그렇지만 현실은 알람을 끄기에 급급하고, 실현될 수 없기에 여전히 신기루로 남아있는 새벽에 대한 환상이다. 언젠가 동틀무렵부터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글을 쓰는 날이 올까. 조만간을 기약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