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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Feb 15. 2022

바람이 우는 산, 울산바위를 향하며

끝없이 솟은 바위가 있다. 바위라고 하고 떠오르는 바위 이미지를 초월하는 거대한 암석. 마치 대지가 그대로 솟은 듯 웅장하고도 위용이 넘치는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암석을 만나러 올라가는 길. 분명 물이 콸콸 흘러야 할 것 같은 넓디넓은 강이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강의 바닥을 대면한 적이 있었던가. 속살이 드러난 듯 새하얗게 빛을 반사시키고 있는 크고 작은 강바닥의 바위들을 본다. 그저, 강원 산간 추운 겨울에 꼭대기부터 물들이 꽁꽁 얼어버린 탓이기를. 새 봄이 오고 꽃이 피면 다시 콸콸 물줄기 흘러 이 새하얀 속살들을 다시 감추어 주기를.  


반듯하게 닦아 놓은 길이 끝나자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길이다. 첩첩산중의 무서움을 겪어본 바 없어 공원 입구 휴게소에서 구입한 것이라곤 고작 귀마개 하나거늘. 고무 밑창 신발이 얼음길에서 속수무책이다. 하는 수 없이 길을 벗어난다. 가이드 길을 벗어나 발자국이 없이 얼어있는 눈을 밟으면 뽀드득, 간신히 미끄러지지 않고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영하 3도 무색하게 오늘따라 햇볕이 이렇게나 뜨겁게 쏟아지는데 휘몰아치는 바람은 감당할 새가 없다. 잠시 조용해져 햇살을 누릴만하면 어느새 멀리서부터 사방을 뒤흔들며 몰려오는 바람. 하나, 둘, 셋을 세고 나면 뒤로 걸음이 밀릴 정도의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서 지나간다. 그렇다. 그렇지만 그 바람은 또 삽시간에 지나간다. 그렇게 잠시간의 평안이, 따스함이 오고 나면 또다시 사정없는 바람 떼가 몰려오기를 반복한다. 


오르는 길 위로 고개를 들면 바람이 우는 산, 울산 바위가 위용을 펼치고 있지만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면 상록수 끝도 없이 푸르른 산세 또한 장관이다. 파랑. 초록. 하양. 구름 한 점 없어 티 없이 맑은 새파란 하늘에 무섭도록 곧게 솟은 초록 나무 숲과, 그 아래 대지를 빈틈없이 채운 새하얀 눈들로 눈이 쨍하다. 맑고, 밝고, 선명하다.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선명한 자연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저런 선명함이 나의 마음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내 마음 또한 흐리지 않고 복잡하지 않고, 미련스럽지 않고 슬프지 않았으면. 흐린 눈물 지나간 자리에 선명함 만이 남았으면. 멀리서라도, 멀리서라도. 


자연이 가진 것 중에 으뜸은 바라보게 하는 것, 그래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도록 자연에 압도되었던 오늘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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