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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Feb 14. 2022

속초여행, 계획의 배신

이번 속초여행이 가장 감사한 것은 우리 가족의 여행 취향을 알게 해 줬다는 점이다. ​


나는 J. 분명 20대까지는 MBTI 하면 ENFP 나왔었는데 30대부터는 ENFJ 나오기 시작했다. 충동적인 것과 계획적인 것은 매우 상반되는  같은데 나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일정 부분 정리와 계획에 대한 강박이 있고, 한편 굉장히 감정적이라 충동적이기도 하다. 여행으로 치자면 미리 알아보고 계획을 짜지 않으면 매우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조차 데드라인 증후군의 적용을 받아 여행의 시작 직전이 되어야 황급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계획을 짠다. ​


이번 속초여행 또한 계획을 짜야하는데 라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손 놓고 있다가 전날  12시가 되어서야 알아보기 시작했다. 급하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정보를 얻을  있는 , 수많은 여행 후기가 있는 국내 최대 여행커뮤니티에서 키워드를 넣고 검색한다. 몇 개  가야겠다고 생각되는 곳이 정해지면 나머지는 동선에 따라 탈락 여부를 결정하고, 그렇게 2 3일의 일정을 완성했다. ​


하지만 속초여행 후기들은 매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여행의 정보가 오로지 먹을 , 맛집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거다. 지난 원주 여행만 해도 뮤지엄 , 흔들 다리 등등 어디 갔고 그다음에 무얼 먹었는지가 후기의 일반적 흐름이었는데 속초는 달랐다. 어디 가서  먹었고, 줄을 많이 섰고, 그다음  먹었고 가 일반적인 후기의 흐름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니 우리도 그럼 오션뷰나 즐기고 맛있는 것이나 먹고 오자고 여행의 가닥을 정했다. 런데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


우선, 추천받은 맛집 자체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우리의 성향이 아니니 그렇게 건너뛴 곳이 두어 , 평일 어드벤티지로 먹은 오징어순대, 황탯국 집, 심지어 카페 등등  맛집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번은 먹겠지만 다시 먹을 이유는 없다 정도? ​


게다가 오션뷰나 즐기기엔 숙소가 생각보다 좁았고 분양을 위해지었으나 숙박을 합니다 느낌의, 휴식을 위한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나마의 오션뷰가 이틀 내내 흐린 날씨에 회색빛 바다만을 선사한 것도 한몫했다. 차라리 눈이라도 왔으면 좋았으련만, 추적추적 비가 웬 말이냐.

그나마 좋았던 곳은 우연히 지나가면서 들린 오래된 돌담 마을, 상도문 마을이었다. 500년이 넘었다는 작은 돌담과 기와집 마을은 조용했고, 소나무가 우거졌고, 마을 곳곳 돌담길에 시가 쓰여있는 낭만의 마을.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여행을  듯했다. ​


그러니 우리 가족의 여행에서 우선순위는 먹을 것보다는 경험이다. 새로운 공간을 가고, 여유를 가지는 것. 그것이 여행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숙소. 최신식이고 위치가 관광지와 가까운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휴식의 콘셉트로 지어진 공간'인지 여부였다. 그걸 위해서라면 어디 외진 곳이어도 상관없다. 마지막으로 맛집. 하. 이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광고가 아닌 실제 다녀온 후기들이 검증한 곳이라고 갔던 곳들인데 이걸 못 믿는다면 앞으로 먹을 곳은 어찌 찾을 것인가. 하지만 확실한 건 앞으로는 언급된 곳들을 다 가보겠다며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겠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 예정에도 없던 설악산 흔들바위를 갈 것이다. 그런 것이라도 안 하고는 이번 여행이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내린 결단이다. 아이를 데리고,  한겨울에 가능할지 모르는 계획이다만 우선은 마음먹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스트레스가 한결 해소되는 기분이다. 오 지저스. 제발. 내일은 날씨라도 좋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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