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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siseon Feb 19. 2022

"이해해 줬어"

아이의 말이 가끔 마음을 울린다. 


원래 키즈카페 같은 곳을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혼자 노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요즘 시국에 인원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초등학생도 안된 아들에게 키즈카페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키즈카페 갈까? 하는 말에 장화 신은 고양이 저리 가라 할 애절한 눈빛을 발사하는 아들을 보면 이 '성지화'는 자주 안 데려감으로써 내가 만들어 준 것인가, 아니면 순수하게 너무나 키즈카페가 즐거운 것인가 혼란이 올 정도. 


그래서 오랜만에 오늘은 키즈카페를 가기로 했다. 어제 출장이었던 엄마 덕에 하루 종일 아빠랑 시간을 보낸 아이인데 오늘은 아빠가 출장이라 엄마만 있는 하루에 대한 나름의 보상이랄까. 물론 두 양육자라도 한 명씩 오롯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지마는, 그래도 신나는 하루를 보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키즈카페라는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입장료 아이 2만 원, 보호자 7천 원. 역시나 두 시간 놀이에 만만치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들어간다. 그래도 오늘은 무려 이름이 '에디슨 뮤지엄'이다. 과학놀이터라는데 좀 다를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드디어 입장. 오! 이것은?! 과천 과학관 미니미였다. 아니 이보다 훨씬 크고 좋은 과천 과학관은 몇천 원인데 이렇게나 비싸게 받는다고?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으나 일단은 즐겁게.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비싼 데다가 평일인 오늘은 아이들이 별로 없다는 점. 그래서 각종 과학 실험을 빙자한 놀이들을 아이가 오롯이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거다. 바람, 빛, 전기를 다룬 다양한 기구들을 체험하다 보니 심지어 '과학 선생님'의 '테슬라 전기' 시연 행사가 있었다. 그러나 웬걸. 이미 과천 과학관에서 어마 무시한 굉음의 시연을 본 아이는 고작 음악에 맞춰 소심하게 지지직하는 시연에는 재미가 없다며 1분 만에 다른 곳으로 가자했다. 


그러나 곧, 과천 과학관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하였으니. 바로 에어 바운서였다. 그리고 이해했지. 아, 메인은 이것이었구나.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에어 바운서를 발견하고 너무 신나 하며 곧장 달려갔다. 그조차도 놀고 있는 아이들은 4명. 인구 밀도 쾌적한 에어 바운서라니. 흔치 않은 일이라 이것이 오늘 입장료 값을 하는구나 했다. 너무나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 그런데 딱 봐도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균형 잡는 튜브에 아이가 올라가려고 하자, 한 두 살 더 많은 듯 한 아이들 두 명이 차지하고는 내려오지 않았다. 아니, 내려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다른 누구도 올라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 올라가려는 아이들을 밀어서 떨어트렸리고 있었다. 그냥 둘까, 하다가 이모 미소를 장착하곤 살며시 말했다. '모두가 같이 노는 장소니까 사이좋게 놀자~' 


모두가 내 아이 같지 않거늘. 이모 말을 들을 이유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더더욱이나 의지를 불태우며 철통방어를 해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애태웠다. 실망한 표정의 아이는 결국 다른 미끄럼틀을 타러 가고, 한 두 번쯤은 더 균형 튜브 근처를 어슬렁 대더니 이내 다른 튜브로 가서 놀았다. 잠시 뒤, 속상한 마음에 물을 마시러 온 아이에게 내가 물었다. '형아들이 네가 타고 싶은 균형 튜브 못 타게 해서 속상하지 않았어?' 그리고 아이가 대답했다. 정말, 매우 쿨한 말투로. '응. 그런데 이해해 줬어~' 


네가 나보다 낫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아이에게 그런 적나라함을 보일 수는 없었으므로 우와 너 멋지다. 더 신나게 놀아! 하곤 다시 에어 바운서로 보냈다. 그렇다. 튜브를 차지하고 아이를 못 올라가게 해서 더 속상한 것은 나였지 아이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아이의 세계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고, 그 모든 상황을 어떻게든 대처해와야 했을 아이였다. 그리고 저런 대처를 하는 아이에게 나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막상 너의 엄마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을 것이다. 왜 그러면 안 되는지를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분노하고, 어른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 태도. 이해해줬어, 는 진정 그 모든 분노의 감정 대신 자기 마음을 다치지 않고도 상황을 잘 넘길 수 있는 의연한 대처법이 아닌가. 하. 진정 우리 아이는 나보다 쿨하구나.  


원래 예민하고, 그래서 화가 많은 내가 오늘은 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 그래. 이해해 주자, 하면 별 일 아니거늘. 무엇보다 나의 감정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런 멋진 방법을, 오늘 아이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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