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글감: 글을 쓰는 이유

by 시선siseon

나는 매일 글을 쓴다.


글쓰기를 굳이 이성의 영역과 감성의 영역으로 나눈다면 나에겐 업으로 써야 하는 글이 이성의 영역이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써야 하는 글. 객관적인 사실, 자료에 근거하여 쓰는 글. 논리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글쓰기. 감성의 영역은 나라는 사람이 느끼는 것에 관한 글이다. 책, 영화, 음악 등 내가 소비하는 콘텐츠에 대한 리뷰. 먹고 마시고 즐기는 감각에 대한 리뷰,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나 발견에 대한 생각의 기록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는 나는 주로 업으로 쓰는 글을 쓴다. 업으로 쓰는 글은 강제성을 띄기 마련이니 당연히 강제적으로 꾸준히 쓴다. 그러나 감정 따윈 배제해야 하는 이성의 글들을 주로 쓰다 보면 종종 매우 허기진 기분이 든다. 나의 이 오만가지 감정은 바닥이 없지만 내가 가진 객관적 사실, 근거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바닥나느냔 말이다. 없는 것을 간신히 채워가며 쓰는 글이란, 넘쳐나는 것들을 쓰고 싶은 반작용을 일으킨다.


반작용의 방향은 양쪽이다. 빈약한 논리에 허덕이는 글이 눈물이 핑 도는 공감의 글을 부르면 감정과잉이 초래한 신파의 글이 기깔나는 압도적 논리의 보고서를 완성하는 환상을 부른다.


그래서 글쓰기는 나에게 늘 결핍이다.


매일 글을 쓰지만 매일 쓰는 어느 글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의 결핍. 글 쓰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그 결핍들이 글을 쓰는 행위를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부담스러운 것'으로 전락시킨다. 일종의 애증의 상태라고 할까. 글을 쓰는 행위가 부담스럽다는 것은 막상 시작하면 금세 쓸 수 있는 글도 시작하기까지 한참의 뜸이 필요하고, 쓰고 싶은 주제가 일상 속에 떠올라도 그 순간 기록하는 것은 꺼려지는, 그래서 늘 글을 쓰고 싶다지만 막상 글을 쓰지는 못하는 상황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에겐 반전이 있다.


그렇게 부담감을 가득 안고 쓴 글들, 결핍과 불만족으로 가득 찬 글들은 역설적이게도 시간이 지난 후,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흔적이 된다. 쓸 당시에는 그렇게나 미워보이는 글들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을 때는 누구에게 들킬까 민망하도록 '내가 이런 글을 썼어? 이때는 글을 제법 잘 썼는데?' 하면서 자아도취의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이것은 또 다른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결핍이 만들어낸 비관의 상대적 결과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 한들, 그래서 나는 나의 지나간, 오래전에 쓴 글들을 읽는 것을 (심지어) 좋아한다.


이 결핍과 부담스러움과 자아도취의 고리를 끊고 순수하게 글쓰기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그래서 최대한 글을 많이 쓰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저 악순환의 고리가 매우 짧은 순간에 자꾸만 반복될 수 있도록, 그래서 극과 극의 감정이 서로를 상쇄하여 조금은 편안하게 글쓰기를 즐길 수 있도록, 매일, 자주 글을 써보는 것이다. 일단 글이 편해지면 글쓰기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오늘 이렇게 한걸음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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