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테이스팅

글감: 오감으로 글쓰기

by 시선siseon

오늘도 와인 수업은 선생님의 부드럽고 우아한 마이크 음성으로 시작되고,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선생님의 눈보다 선생님 눈앞에 놓인 오늘의 시음 와인 두 병에 가서 꽂힌다.


으흐음. 오늘 마실 와인은 어떤 와인일까.


두 와인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리는 동안 수업은 벌써 본격적으로 이론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장, 한 장 바쁘게 넘어가는 PPT 장들, 수없이 쏟아지는 지식의 향연에 호기심이 점점 무덤덤해질 때쯤, 드디어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조금은 어색한 얼굴로 옆사람과 오늘의 건배사를 나누고 여기저기서 챙, 차르륵 하고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영롱하게 공간을 채우고 나면 잠시의 적막이 시작된다.


와인잔에 코를 박고 오늘 배운 이론의 향을 찾으려는 킁킁거림. 부드럽게, 혹은 거칠게 와인잔을 돌리는 손짓에 따라 와인잔 속에서 힘있게 회오리치는 와인의 소리, 와인의 남은 잔향마저 오롯이 느끼고자 스르릅,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들은 곧 잠깐의 적막을 깨고 와인에 대한 평가, 맛을 느끼는 순수한 탄성의 웅성거림으로 바뀐다. 오늘 배운 포도 품종의 고유의 향, 글로 쓰인 그 향들을 영롱한 액체 속에서 내 후각이 정말 찾아냈을 때의 희열이란! 오늘 마신 화이트 와인은 밝은 레몬색 빛깔의 백향과, 패션후르츠 향과 풋풋한 잔디 향이 잔뜩 느껴지는 와인. 어쩜 이리도 패션후르츠 과일을 짜넣은듯한 열대과일의 향이 이 포도 액체에서 나는 걸까. 산도는 또 어찌나 좋은지! 입안 가득 침이 잔뜩 고이는 기분 좋은 상큼함은 와인을 넘기고 나서도 얼마간 말을 아끼게 한다. 이쯤이면 내가 패션후르츠에, 이 상큼함이 가지고 있는 심상으로 신의 물방울 마냥 멋들어지게 장면도 하나쯤 묘사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든다.


다음에 화이트 와인을 먹을 일이 있으면 필히 이 와인, 쇼비뇽 블랑 100%의 와인을 찾으리라. 얼마간의 취기를 안고 강의실을 나서면서 오늘도 무언가 충족된 기분, 이 맛에 내가 이 수업을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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